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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얼굴에 와 닿는 공기의 8할은 이미 봄이었다. 나머지 2할의 겨울 때문에 아직 패딩점퍼를 입고 다녔다. 조금만 걸었는데도 땀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익숙하다는 편안함으로 갈아입지 못한 외투는 겨울의 관성이었다.

정지한 물체는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대로, 내가 정지하려는지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지 잠시 헷갈렸다.

하지만 이제 겨울의 관성을 그칠 때가 되었다. 파릇파릇하고 꽃향기 달콤한 봄이 저만치에서 달려오고, 어차피 봄이 보내는 부드러운 바람의 마찰로 겨울은 곧 정지할 것이었다.

영동지방에 때아닌 폭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지만 내게 지난겨울은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었다.

온 땅을 꽁꽁 얼리는 칼날 같은 바람과 산과 들을 하얗게 뒤덮은 폭설, 강물의 단단한 결빙이 없었다. 견디기 힘든 차가운 겨울 속에서 봄에 대한 설레는 희망이 잉태되는 법인데 난 그러질 못했다.

제 계절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는 건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익숙함 때문인지도 몰랐다. 본질적으로 나에 대한 익숙함, 이미 나에게 철저히 고착된 감정이나 열정, 사고나 감각들이 나의 불감증의 징후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익숙함의 정체는 멜빌의 "만 미터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돌아온 고래의 눈"을 더 이상 찾지 않는 무감각해진 상태일 거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무뎌져 가는 내가 다행스러웠으나 한편으론 두려웠다. 나이 탓이라고 여기기엔 뜨거운 햇볕 아래 두꺼운 털옷을 껴입는 나를 바라보듯 생뚱맞고 허허로운 기분이었다.

게다가, 삶이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 더 이상 아니라는 확신이 뚜렷해져 가고 있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 나는, 점점 더 단순한 영혼이 되길 염원하고 있었다.

우연성과 유한성, 불확실성을 원죄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불완전하기만 한 사람들의 불멸성을 부정했다. 내가 보기에 인간이 불멸을 추구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그러한 생각으로 지내는 내내 이번 겨울은 한 번도 겨울답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막 봄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한 인격을 만났다.

그의 행동은 이기주의에서 벗어났고, 그를 이끄는 생각은 더없이 고결했으며, 어떠한 보상과 대가도 바라지 않았으나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근사한 인격, 그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었다. 양치기였던 엘제아르 부피에, 쉰다섯 살의 중년 남자였다.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잃고 절대고독과 슬픔 속에서 30여 년간 황량한 폐허를 낙원으로 만든 남자, 척박한 산비탈에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만든 사람이었다. 난 그를 만난 후 얼어붙은 바다에 도끼를 내리치듯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인간의 불멸성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부피에가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행한 나무 심기는 자신만의 존재 이유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멋진 방법을 발견하고 수행하는 길이었다.

냉담한 폭력성이 난무하던 메마른 황무지는 이제 향긋한 바람이 불었고, 숲 속에서는 맑은 샘물이 넘쳐흘렀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이 밝은 웃음을 터뜨리는 활력 넘치는 축제가 열렸다.

오직 한 사람의 육체와 정신의 힘만으로도 거룩하고 고결한 지상의 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무력한 관성을 멈추게 했고 다가올 봄을 간절히 고대하게 했다.

부티에는 생명을 심는 사람이었고, 생명력만이 삶을 치유하고 구제하는 불멸의 증거였다.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난 근사한 봄을 향한 새로운 관성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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