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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새들도 잠든 시간, 나는 깨어 있다. 시간의 가장자리, 하루의 문을 여는 여명 전까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얼마만 이던가. 시간의 최전선에서 맛보는 고독과 희열, 10여 년 전 내가 '매혹의 시간'이라고 부르던 그 새벽 3시.

상투성이 진부함으로 이어지는 지리멸렬한 계절을 몇 번이나 흘려보냈다. 느끼지 못하고 사유하지 않은 시간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마음의 굶주림은 몸을 얻지 못했다. 육체가 되지 못한 영혼은 무능했고 혁명은 더 이상 없었다.

세월의 물살에 떠밀려 가기만 해도 살아갈 수 있었다. 집합명사로만 남아도 밥은 먹었고, 나를 세속화 시키며 타인과 무디게 지내는 관성이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떠받쳐야 할 일상의 중력은 내 삶을 무겁게 했다. 한마디로 내가 부재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파스칼 키냐르의 사진을 책상 앞에 붙였다. 사진 속 키냐르의 갈색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키냐르의 언어들을 하나하나 음미하기 시작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것"이 그의 독서 목표 중 하나였다. "책들은 이해하게 해주나요· 네, 살게도 해주죠. 정말 그래요" 키냐르의 말처럼 나도 이해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읽어야만 했다. 정말 그랬다.

인생이 수수께끼라는 것은 확실한 팩트였다. 나를 잉태하게 한 출생의 순간을 알 수 없고 내 죽음 후의 시간을 모르기에 시작과 끝이 공백으로 존재했다. 그 결여의 시간들이 심연으로 남았다. 그 심연을 메꾸려는 시도, 비밀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이 인생이었다.

심연을 생기 있게 하는 메타포,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생생한 서사가 필요한 것은 이 수수께끼에 대한 응답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말은 인생의 근원에 대한 갈망과 심연의 증거들로 넘쳤다. 하지만 혀끝으로 느껴지는 미각처럼 키냐르의 관능적이고 농밀한 언어가 날 들뜨게 했다. 위조된 것들이 뒤집히자 인생의 진실이 드러났다. 자신만의 특별한 중력을 만드는 것은 욕망에 매혹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벌써 7년 전 이었다. 키냐르의 책들은 읽지도 않은 채 서가에 꽂혀만 있었다. 얼마 전 새벽부터 그 책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설렜다. 키냐르의 "사랑하다, 즉 책을 펼쳐 놓고 읽다"라는 단 하나의 문장에 내가 열광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득하지만 황홀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매혹되었다. 파스칼 키냐르의 언어에 중독되어 갔다. 흡사 지독한 사랑에 빠진 것처럼 순간순간 숨이 막혀 왔다. 그리고 키냐르를 통해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키냐르의 언어들로 나는 환원 불가능하고 불가역적 한계상황인 인생, 그 속의 부재와 갈증과 질곡조차 견뎌 낼 수 있었다.

언어에 의해 중독되듯이, 타인에 의해서도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 키냐르가 내게 준 가르침이었다. 내게 책을 읽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이 내 인생의 뮤즈를 찾는 것이었고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독했으나 매혹적이었다.

내가 일찍이 '매혹의 시간'이라 부르던 새벽 3시의 시간을 다시 찾았다. 난 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그 시간을 힘껏 안을 것이며 그 포옹을 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난 내 욕망의 시간 속에서만 길을 잃을 것이며, 이 은밀한 사랑으로만 전율할 것이며. 미처 읽지 못한 키냐르의 언어들을 읽고 또 읽을 것이며, 또 기꺼이 매혹될 것이었다.

수취인 불명, 발송인 반송의 서한을 보내고 또 보내는 암호투성이의 불가해한 인생일지라도 난 이 중독된 사랑 속에서만 살아갈 것이다. 내게 새벽 3시의 시간, 매혹의 새벽에 당도할 수만 있다면 난 담담하게,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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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궁긍적으로는 국민들의 편익이 향상됩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공사) 충북지역본부가 추진중인 지적재조사 사업은 '기관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토지를 이용하는 주체, 즉 국민·주민들을 위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토의 14.8%는 토지의 현황과 지적이 다른 불부합지다. 이를 최신기술로 정확히 측량해 바로잡는 게 지적재조사다. 이익기 충북지역본부 지적재조사추진단장은 지적재조사가 '땅의 가치 상승'을 이끈다고 설명한다. 이 단장은 "토지 경계를 바로잡게 되면 진입로가 없던 토지에도 이웃 간 경계 조정을 통해 도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건물도 증축할 수 있게 돼 지가가 상승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적재조사를 통해 소유권 문제가 정리되면 도시재생 뉴딜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적재조사에 대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우선 '비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영향이 크다. 지적재조사는 주민설명회와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거쳐 진행된다.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만큼 측량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이 단장은 "사업진행과 측량 등기정리 등에 있어 토지소유자가 부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