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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4.17 14:15:48
  • 최종수정2022.04.17 14:15:48

장정환

에세이스트

성안길을 걷다 보면 가끔 아련해진다. '쟝글제과'에서 맡던 구수한 빵 냄새가 코속을 간지럽히는 것 같고, 영화표 한 장이면 연속 상영 영화를 몇 번이고 보던 '청주극장'의 잔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청주여상' 여학생의 눈부시게 하얀 교복을 마주한 까까머리 친구 셋은 쟝글제과에서 우유 한 잔씩을 아껴 마시면서 서로 잘난 척했다. 학보에 실린 단편소설을 보고 내가 여학교로 편지를 보냈고, 마침내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소설을 쓴 작가(?) 여학생은 나보다 친구에게 더 관심을 보여서 내겐 아직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청주극장에서 영화를 본 날은 극장 옆 으슥한 골목 리어카에서 일명 '빨간책'을 몰래 사서 친구들과 눈알이 빨개지도록 돌려 보곤 했다. 물론 그 야한 화보는 돈을 많이 낸 친구에게 지분이 있어서 내 소유는 되지 못하였다. 야속한 일이었다.

이 모든 게 40년도 지난 일이고, 쟝글제과도 청주극장도 청주여상도 이젠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거리를 지나면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마구 분비되는 것만 같다. 검정 교복을 입고 교모를 눌러쓴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30년 이상 재직한 회사에서 '창립 60주년 충북백서'를 발간했다. 200쪽이 넘는 그 백서를 끝까지 읽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퇴직을 앞둔 나의 회한이 작용했을 것이고, 60년 중에 절반을 보낸 내 지난 시절의 흔적이 곳곳에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종황제 시대, 건청궁 경내에 아시아 최초로 백열등을 밝힌 지 1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청주에도 110여 년 전(1911년)에 이미 청주시 탑동에서 '청주전기'를 설립하고 전깃불을 보낸 사실을 백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1911년경에는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노골화하면서 청주 읍성을 허물기 시작한 해이다. 읍성을 허물자 읍성 터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수가 1천 명이 넘었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성안길 시대의 시작이다. 성안길에서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의 따각거리는 게다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슬픈 장면이다.

1957년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세워진 괴산수력발전소는 또 하나 충북의 자랑이다. 해방 이후 북한의 5·14 단전과 한국전쟁으로 전력 사정은 피폐해졌으나 국내 기술과 자산으로 최초의 수력발전소가 우리 지역에서 완공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맞은 체육대회 날, 처마 저고리를 입고 운동장을 달리는 선배 여직원들의 사진을 보노라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하나같이 중절모를 쓴 선배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사람을 사랑하듯이 어느 장소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내게는 성안길이 그랬다. 성안길을 거닐었을 100년 전의 식민지 사람들, 중절모를 쓴 60년 전 회사 선배들, 나의 검정 교복 시절, 더벅머리 대학생 때의 시간이 성안길 곳곳에 스며 있다. 애환과 정겨움으로 북적였을 그 거리가 현재의 길로 연결되었다.

모든 거리는 영고성쇠의 역사를 담고 있어 사람의 이야기가 남는다. 하얀 교복의 여학생은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소설을 남겼다. 신라시대부터 살았던 청주 읍성 안의 수많은 사람은 무슨 사연을 남기며 사라졌을까?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며 성안길을 다시 걸을 것인가.

난 다시 한번 쟝글제과에서 크림빵과 따끈한 우유 한잔을 먹고 싶다. 그 시절의 친구들과 큰소리를 지르며 성안길을 활보하고 싶다. 갈래머리 하얀 교복의 여학생은 그 이후 어떤 이야기를 만들며 늙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성안길의 거리는 이야기로 연결되고 이야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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