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26.0℃
  • 구름많음강릉 28.0℃
  • 구름많음서울 24.5℃
  • 맑음충주 25.4℃
  • 맑음서산 21.4℃
  • 맑음청주 25.4℃
  • 맑음대전 25.8℃
  • 맑음추풍령 26.0℃
  • 맑음대구 26.1℃
  • 맑음울산 22.5℃
  • 맑음광주 25.0℃
  • 구름조금부산 21.0℃
  • 맑음고창 25.3℃
  • 맑음홍성(예) 23.7℃
  • 구름조금제주 18.9℃
  • 구름조금고산 18.1℃
  • 구름조금강화 22.5℃
  • 맑음제천 23.9℃
  • 맑음보은 25.4℃
  • 맑음천안 24.9℃
  • 맑음보령 22.5℃
  • 맑음부여 24.9℃
  • 맑음금산 26.8℃
  • 맑음강진군 22.8℃
  • 맑음경주시 28.3℃
  • 맑음거제 21.0℃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6.02.16 14:52:30
  • 최종수정2016.02.16 14:52:29

장정환

에세이스트

경쾌한 비트의 기타연주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난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 기타반주에 맞춰 걸핏하면 부르던 노래였다. 그 노래의 신나는 멜로디를 좋아했다

폴 앵카의 모든 노래는 내 하이틴 시절의 전설이었다. '다이애나'부터 시작해서 '유아 마이 데스티니', 그중에서도 '크레이지 러브'는 정열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내 또래 피 끓는 동무들도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내 10대와 20대 초의 한 시절을 함께해온 폴 앵카였다. 그 폴 앵카의 낯익은 목소리 '파파'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래를 찾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이제는 흥겨운 비트의 기타 연주보다는 노래의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아버지는 우리를 먹여 살리고 신발을 신겨주기 위해 매일 일하셨죠.'

내 아버지도 늘 일하셨다. 가끔씩 몸이 아파 누워 계실 때 말고는 참으로 부지런하게 움직이셨다. 전쟁 중에 왼손을 잃고 평생 의수를 한 채로 사셨지만 난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걸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다.

어릴 때는 매주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는 한 손으로 때를 밀어주셨다. 매번 얼마나 세게 미는지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 목욕탕이 드문 시절이라 말쑥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순전히 부지런한 아버지 덕분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독한 감기몸살로 너무 힘들어서 학교에 못가겠다고 했다. "정 그러면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뵙고 인사나 하고 오자"며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함께 등교를 했다. 그 때의 선생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버님, 애가 이렇게 아픈데 그냥 쉬게 하시지요."라며 황송해 하던 모습, 그 이후로 난 한 번의 결석도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생 때 국어 글짓기 과제물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절, 무작정 반항하던 십대의 울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잡문이었다. 제목자체부터 좀 과격했다. '어느 광인(狂人)의 일기', 체육교사이던 담임선생님이 먼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불렀다. 너 댓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아버지에게 선생님이 글을 내밀었다. "아버님 이 '범인(犯人)(?)의 일기'를 좀 보세요. 이놈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제목은 한자로 써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교무실이 떠나가도록 껄껄 웃으셨다. "선생님 이놈이 생각이 좀 많습니다. 이놈은 내가 잘 아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제 자식에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라고 한마디 하시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이후에 국어선생님과 담임선생님 간에 심한 언쟁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버지는 내가 하숙을 옮길 때마다 일부러 하숙집을 찾아오셨다. 맨 먼저 하시는 일이 주인아저씨를 찾아 큰 절을 올리는 거였다. 갑자기 큰 절을 받게 된 하숙집 아저씨는 당황해 하며 맞절을 했다. 이후 난 다른 하숙생들 몰래 가끔씩 귀한(?) 콜라를 얻어마셨고, 도시락 바닥에 숨겨진 계란 프라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짧게 사셨다. 세상을 뜨신지 20여년이 지났다. 며칠 전 아버지가 된 내 아들을 생각하며 난 내 아버지가 목이 메도록 그리워졌다.

'아들아 난 네가 자라는 모습이 자랑스럽단다. 이젠 네 마음대로 하렴.' 파파노래는 그렇게 무심하게 흘렀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기술을 넘어 협력으로" 성장 네트워크 구축하는 충북이노비즈

[충북일보] "충북 이노비즈 기업들이 연결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지역 내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30일 취임한 안준식(55) 신임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장은 회원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서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안 신임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할 부분은 이노비즈기업 협회와 회원사 위상 강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경영혁신위원회(위원장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회원사 협력위원회(위원장 한연수 ㈜마루온 대표) △봉사위원회(위원장 함경태 ㈜미래이앤지 대표) △창립 20주년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의수 ㈜제이비컴 대표)로 5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안준식 회장은 도내 회원사들이 가진 특징으로 빠른 적응력과 협력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충북 이노비즈 기업은 제조 기반 기술력과 신사업으로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첨단산업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분포해 있고,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화도 잘 이뤄져 있어 협력 네트워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