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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드디어 쇼펜하우어 읽기를 마쳤다. 지독한 염세주의자라는 딱지가 늘 내 머릿속에 자리 잡혀서 가까이하기 어려운 철학자였다. 처음 읽기 시작한 지 거의 40년 만에 마무리했으니 내게 그리 호감 가는 철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권총을 침대 옆에 두고 자고, 이발사에게는 면도도 안 받고, 불이 나는 것이 두려워 이층에서는 잠을 자지도 않을 정도로 염세적으로 이름 높았던 쇼펜하우어도 결국은 오래 살면서 노년에 명성도 얻고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하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그의 주저 첫말이 쇼펜하우어를 대변하는 주제어일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방식대로 보고 난 후 그것이 세상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개체의 의지가 드러난 세계임을 주장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결론은 불교의 반야바라밀과 아주 유사하여 예전에는 난해하게만 느껴지던 것이 오히려 친숙하게 생각되니, 내 사고의 폭이 깊어진 것인지 세월의 힘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읽기 시작한 윌 듀런트의 '철학이야기'나 니체의 책들로부터 어제 마침표를 찍은 쇼펜하우어까지, 지나간 40여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의 책을 뒤적이며 홀로 고민하던 시간의 보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철학책 하나 이해 못하고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하게 여겨질까.

오래전부터 내가 읽던 책 대부분의 저자들, 예를 들어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데리다, 질 들뢰즈, 레비스트로스, 미셸 푸코, 우리에게 익숙한 루소, 파스칼,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등, 이 철학자들이 왜 모두 프랑스 사람인지가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의 해답을 난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찾았다. 우연히 보게 된 바칼로레아의 질문들,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겨우 20살 전의 청소년에게 요구하는 철학 시험 문제가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답할 수준이라는 사실에 난 혀를 내둘렀다.

1800년대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된 대입 자격시험 바칼로레아는 4시간 동안 논문 형태로 작성해야 한다고 하니 가히 그들의 교육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겠다. 난 우리의 주입식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서 두려움 반, 부러움 반으로 자괴감에 빠졌었다.

이 자괴감을 TV로 대선 후보자들의 토론을 보며 난 또다시 느꼈다. 후보자의 얕은 생각, 야비한 행동, 비죽거리는 비루한 말로 국민을 호도할 수 있다는 천박함에 화가 났다. 술수만 있고 철학이 없는 사람, 독서력이 떨어지는 정치가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각성이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미래를 담보할 것이다.

철학과 호연지기를 가진 지도자를 보고 싶다. 자신의 권력과 사익만 갈구하는 비열한 지도자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미세먼지보다 더 해롭고, 오염 폐수보다 더 위험한 정치가들은 자연인으로 조용히 돌아가길 원한다. 간디가 말한 사회악 중에 가장 큰 해악인 '철학 없는 정치'를 사라지게 하고 싶다.

이틀 후면 대통령 투표일이다. 미래가 결정되는 날이다. 투표는 나의 표상이다. 세계를 향한 내 올바른 의지가 그대로 드러나게 하자. 모두의 소망이 실현되는 세상을 생명의 에너지인 내 의지로 만들어보자. 삶을 너절하게 만드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더는 휘둘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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