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장정환

에세이스트

누구나 자기만의 언어가 있다. 자기만이 좋아하는 단어가 있고, 자기만의 독특한 말버릇이나 말투가 있다. 난 사람들마다 달리 발화되는 말에 따라 누구에게는 매력을 느끼고 누구는 별로라고 여긴다.

말을 멋들어지게 하는 사람이 실은 속이 텅 빈 사람이기도 하고, 말은 어눌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깊이가 있어 빠져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말하는 언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몇 마디만 나눠보면 그 사람이 진실한지, 거짓투성이인지도 알게 된다.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앵무새처럼 전하는 사람인지도 구별된다.

내 삶이라는 것도 나만의 말을 익히는 과정이며, 남에게 어떻게, 어떤 말을 해 오며 살았는지 보여주는 언어의 여정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한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엄혹한 70년 대의 군사독재 시절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전교 어린이회장을 직선으로 뽑던 해였다. 반장이랍시고 담임 선생님이 회장에 출마하기를 권유했다. 장문의 출마 연설문을 몇 날 몇 밤에 거쳐 달달 외웠다. 무슨 구국의 결단을 하는 것처럼 결연하게 마음을 다잡고 당선의 포부를 가졌던 것 같다. 담임뿐 아니라 가족들 앞에서 예행연습을 수 없이 반복했다.

그 때 큰 형이 표정관리나 제스처 코치를 맡았다. 연설 마지막 즈음에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팔을 힘껏 치켜 올려야 한다는 친절한 지도까지 받은 상태였다.

드디어 결전의 날, 오랫동안 연습한대로 연설은 술술 나오고 난 마지막 힘을 다해 팔을 높이 휘둘렀다. "여러분!" 하며 팔을 쳐드는 순간, 갑자기 다음에 할 말을 잊어버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연단 앞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3천여 명의 눈이 내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난 '괜히 팔을 올렸다'는 후회가 엄습했다.

어린 나이에도 마무리는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마디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린 후 연단을 내려왔던 것 같다.

그 때도 지금보다 더 뻔뻔했는지 별로 창피하지는 않았다. 다만 말을 할 때 과장된 몸짓이나 어설픈 허세는 좋지 않다는 교훈 하나는 건졌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 이후로도 남들 앞에서 얼마나 많이 과장된 몸짓과 허세의 말을 하며 지냈는지를 돌이켜 보니 오히려 지금 더 얼굴이 화끈거린다.

난 오랫동안 충만한 말을 찾으며 살아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발견하고, 언어를 수집하고, 새로운 말을 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에 작가의 길로 발을 들여 놓았다.

사람들을 대할 때 자꾸만 침묵하게 되는 것은 내가 할 말을 갖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기에 난 끝없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려했다. 내 언어가 텅 비게 된다면 텅 빈 존재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었기에 충만해진 언어로 내 실존을 꽉 차게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욕심을 버렸다. 얼마 전 레이첼 리먼 필드의 '어떤 사람'이라는 시 한편을 읽었다.

"이상한 일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몹시 피곤해 진다는 것,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속 생각이 움츠러 들어 마른 잎처럼 바삭거린다는 것.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음속 생각이 갑자기 환해져서 반딧불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언어 이전의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런 대화법도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