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8.02.27 13:26:04
  • 최종수정2018.02.27 13:26:04

장정환

에세이스트

다시 까무룩 잠에 빠졌다. 출근도 못하고 혼미한 의식으로 잠 속을 왔다 갔다 하였다. 날선 겨울도 잘 참고 견뎠는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심한 몸살에 걸려버린 것이다.

요즘엔 감기에 한번 걸려도 온몸으로 앓는다. 지난해부터 생긴 현상이다. 손자 녀석은 한 번씩 앓고나면 부쩍 성장했다. 병이 드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비밀지(秘密知)를 몸에 익혀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육체도 자연의 산물이기에 혹독한 몸의 수련과 정화의 과정을 거친 후에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한 몸으로 단련되는 것이었다.

손자는 살아갈 날이 많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병으로 단련해야 할 과정, 내 몸과 소통해야할 것이 무에 그리 남았다고 이 아픈 시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씩 앓을 때마다 내 삶을 지탱해온 견고한 질서들이 허약하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조차 23.5도로 기운 불완전한 모습이듯이, 내 몸도 모든 병에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고, 내 삶의 완강한 일상의 조화조차 한 순간의 병과 상처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요즘에 몇 번씩 깨닫곤 했다.

집에 올 때마다 화분을 깨부수던 만 두 살의 손자 녀석이 큼지막한 질그릇을 또 부셔버렸다. 그것을 버리다가 날카로운 모서리에 내 오른쪽 엄지가 깊숙이 베였다.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중에도 가족들이 걱정할세라 아무도 모르게 상처를 동여매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이 작은 상처가 증언하는 일상의 무수한 질서의 왜곡과 마주쳐야 했다.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자연스레 행하던 것, 예를 들어 출근 전에 면도를 하는 일, 샤워를 위해 비누를 잡는 일, 머리를 감는 것,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일, 옷을 입기 위해 단추를 채우는 것, 바지를 올리는 일, 서류 가방을 드는 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 내가 몸으로 하는 모든 일이 이 엄지의 작은 상처에 통제받는 기막힌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엄지에 상처가 났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평생 한 손을 의수로 살아갔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바지를 올리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때 아버지가 떠올랐고, 머리를 감다가 갑작스런 통증으로 소스라칠 때 아버지를 생각했다. 어설픈 젓가락질로 밥을 입에 떠 넣을 때도 아버지가 기억났다. 아버지가 한 손으로만 생활한다는 것을 난 아버지 생전에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어쨌든 엄지손가락의 작은 상처로 결정적인 진실을 깨우친 명징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거의 일주일이 지나니 상처는 아물었고 난 금방 상처를 잊었다. 난 예전의 무감각한 일상으로 회귀하면서 내 몸을 자만하는 사람으로 곧 되돌아갔다.

하지만 난 오늘 아픈 몸을 추스르게 되었을 때, 병이 가져다준 일상의 어긋난 간극을 생각하였고, 내 몸과 맘에 새겨진 숱한 상처의 무늬들도 훑어보게 되었다. 어떤 상처는 기원도 알 수 없고 어떤 것은 기억과 함께 흐려졌다. 어떤 상처는 너무도 또렷하여 내 생을 마칠 때까지 함께 할 거였다.

게다가 내가 혹여 남들에게 남겼을 상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누군가의 몸과 영혼에 새겼을 상처의 흔적, 나로 인해 누군가의 몸을 관통했을 고통의 시간들이 어느 만큼이며, 또 상처난 누군가의 손발이 되어주지 못한 날이 그 얼마일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가끔씩 아픈 것은 한 때나마 맑은 샘물 같던 젊은 나를 잊지 말라는 각성이며, 남의 아픔과 상처도 한번쯤 돌아다보라는 경고이며, 남아있는 내 삶이 결코 많지 않음을 겸손하게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의 통보이니 난 아픈 몸조차 고마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