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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2.27 13:26:04
  • 최종수정2018.02.27 13:26:04

장정환

에세이스트

다시 까무룩 잠에 빠졌다. 출근도 못하고 혼미한 의식으로 잠 속을 왔다 갔다 하였다. 날선 겨울도 잘 참고 견뎠는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심한 몸살에 걸려버린 것이다.

요즘엔 감기에 한번 걸려도 온몸으로 앓는다. 지난해부터 생긴 현상이다. 손자 녀석은 한 번씩 앓고나면 부쩍 성장했다. 병이 드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비밀지(秘密知)를 몸에 익혀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육체도 자연의 산물이기에 혹독한 몸의 수련과 정화의 과정을 거친 후에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한 몸으로 단련되는 것이었다.

손자는 살아갈 날이 많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병으로 단련해야 할 과정, 내 몸과 소통해야할 것이 무에 그리 남았다고 이 아픈 시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씩 앓을 때마다 내 삶을 지탱해온 견고한 질서들이 허약하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조차 23.5도로 기운 불완전한 모습이듯이, 내 몸도 모든 병에 허술하게 방치되어 있고, 내 삶의 완강한 일상의 조화조차 한 순간의 병과 상처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요즘에 몇 번씩 깨닫곤 했다.

집에 올 때마다 화분을 깨부수던 만 두 살의 손자 녀석이 큼지막한 질그릇을 또 부셔버렸다. 그것을 버리다가 날카로운 모서리에 내 오른쪽 엄지가 깊숙이 베였다.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중에도 가족들이 걱정할세라 아무도 모르게 상처를 동여매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이 작은 상처가 증언하는 일상의 무수한 질서의 왜곡과 마주쳐야 했다.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자연스레 행하던 것, 예를 들어 출근 전에 면도를 하는 일, 샤워를 위해 비누를 잡는 일, 머리를 감는 것,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일, 옷을 입기 위해 단추를 채우는 것, 바지를 올리는 일, 서류 가방을 드는 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 내가 몸으로 하는 모든 일이 이 엄지의 작은 상처에 통제받는 기막힌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엄지에 상처가 났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평생 한 손을 의수로 살아갔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바지를 올리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때 아버지가 떠올랐고, 머리를 감다가 갑작스런 통증으로 소스라칠 때 아버지를 생각했다. 어설픈 젓가락질로 밥을 입에 떠 넣을 때도 아버지가 기억났다. 아버지가 한 손으로만 생활한다는 것을 난 아버지 생전에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어쨌든 엄지손가락의 작은 상처로 결정적인 진실을 깨우친 명징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거의 일주일이 지나니 상처는 아물었고 난 금방 상처를 잊었다. 난 예전의 무감각한 일상으로 회귀하면서 내 몸을 자만하는 사람으로 곧 되돌아갔다.

하지만 난 오늘 아픈 몸을 추스르게 되었을 때, 병이 가져다준 일상의 어긋난 간극을 생각하였고, 내 몸과 맘에 새겨진 숱한 상처의 무늬들도 훑어보게 되었다. 어떤 상처는 기원도 알 수 없고 어떤 것은 기억과 함께 흐려졌다. 어떤 상처는 너무도 또렷하여 내 생을 마칠 때까지 함께 할 거였다.

게다가 내가 혹여 남들에게 남겼을 상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누군가의 몸과 영혼에 새겼을 상처의 흔적, 나로 인해 누군가의 몸을 관통했을 고통의 시간들이 어느 만큼이며, 또 상처난 누군가의 손발이 되어주지 못한 날이 그 얼마일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가끔씩 아픈 것은 한 때나마 맑은 샘물 같던 젊은 나를 잊지 말라는 각성이며, 남의 아픔과 상처도 한번쯤 돌아다보라는 경고이며, 남아있는 내 삶이 결코 많지 않음을 겸손하게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의 통보이니 난 아픈 몸조차 고마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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