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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36년이나 된 친구와 헤어지려고 하는데 힘드시겠어요." 보건소의 상담원이 날 빤히 쳐다보면서 패치를 건넸다. "그러게요", "약간 긴장하신 것 같은데 열심히 해 보세요"

보건소 문을 나서면서 슬펐던가? 슬펐다. 쓸쓸하고 허전해서 36년이나 된 그 오랜 친구를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

1979년 4월, 골목길 담장에 흐드러진 개나리가 그 마지막 꽃잎을 떨쳐버렸을 때 난 '개나리'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른한 봄 햇살이 점령한 일요일 오전, 하숙집 골방이 빙글빙글 돌았고, 나 또한 나른한 햇살 속으로 무너졌다. 그렇게 담배와 만났다.

학교수업 3교시를 마치고 쉬는 시간마다 3층 화장실에서 담배 한 개비를 친구들과 나눠 피웠다. 어질거리며 2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은 늘 위태롭고 몽롱했으나 달콤했다. 금욕과 억압의 시절, 금기를 탐닉하는 쾌감이 우리 또래의 유일한 출구였다.

재수시절엔 학원가 컴컴한 음악다실이 담배와 자유의 해방구였고,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교수가 건네는 담배를 공유하는 오만한 즐거움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출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선배들의 책상에 놓여있는 재떨이를 깨끗이 닦는 거였다. 사무실에서 서류 작성을 하며 입에 담배를 물고 살다시피 한 시절이었다.

불과 4반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시대는 돌변했다.

담배는 악의 대명사가 되었고, 사회적 불행의 씨앗으로 간주되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저급한 행위로 은유되었으며, 반국가적으로 매도당하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제의가 되었다. 끽연자는 이제 루저 혹은 아웃사이더로도 불리게 되었다. 난 이제 바뀌어야만 했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기호학의 천재, 롤랑바르트 식으로 말해서 "가끔 부재를 잘 견디어낼 때,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소중한 이의 떠남을 감수하는 모든 사람의 대열에 끼게 되는 것, 이 잘 견디어낸 부재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기도"했다. 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담배와 이별함으로써 정상적인 사람으로 분류될 거였다.

하지만 이 짜릿하고 달콤한 중독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독이 약의 성분이 되듯이 인류역사상 온갖 몰입의 경지, 열정의 중심에는 도취의 독이 묻어 있었다. 무엇엔가 도취하여 중독되는 순간에만 사랑이나 혁명, 아름다움, 예술의 정수가 탄생했다. 하물며 돌고래마저 복어 독의 짜릿함을 즐기고 난 후라야 물개를 더 잘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담배는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물질이어서 참아서 이겨내는 건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들 말했다. 그러니 처음 담배를 피우게 된 계기, 마음속 상처와 결핍을 찾아서 돌아보라고, 그것을 치유하면 자연스레 끊을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우리는 담배가 아니라 오랫동안 상처와 결핍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능한 프로게이머와 게임중독자의 차이점은 통제력이라는 사실을 오랜 친구와 헤어지면서 알아냈다.

오랜 결핍이든 끈질긴 열정이든 난 이제 중독성 강한 36년 이 친구와 단연코 결별할 거였다.

난 내 삶에서 중독자라고 불리기보다는 삶의 유능한 프로였다고 기억되고 싶어졌고, 아니면 이 오래된 중독과 헤어지는 일이 또 다른 짜릿함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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