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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충북일보] 순한 초식짐승처럼 봄을 맞이했다. 무심하고 단조로웠다. 가벼운 점심을 마치고 잠시 산에 오를 때, 중턱부터 뽀얀 바람꽃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새어 나왔다.

지난 계절의 질척이는 진눈깨비도 사라지고, 신생의 실바람만 가득한 오솔길에서 새들과 마주쳤다. 새들이 푸드덕 날아갔고 난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젠 어긋날 것도 막힘도 없이, 더 이상 기다림이나 조바심 따위는 필요치 않은 시간이었다. 세상 곳곳에 나무와 풀과 꽃들의 간절한 떨림만이 있었다. 난 들썩이는 봄의 리듬에 맞춰 그저 삼키면 되는 공기, 몸을 관통하는 햇볕만 받아들이면 되었다.

'광합성이 절대로 필요해'라며 내 몸이 말했다. 난 햇빛과 바람과 함께 온전히 현재만 살자고 되뇌었다.

지난 계절은 내게 인색하기만 했고, 긴 겨울동안 난 알베르 카뮈를 너무 진지하게 읽었다. 청년기에 거쳐야할 '부조리'의 감수성을 지금 나이에 되새김하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였다.

남들은 습관과 타성으로 잘도 살아가는데, 관성처럼 깔깔대며 호호거리며 잘만 사는데, 나만 이방인처럼, 시지프처럼, 전락의 주인공처럼 나와 화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카뮈의 말대로 '무대장치들이 문득 붕괴되는 순간'을 느낀 부재의 감정이었다.

고독한 섬과도 같은 카뮈의 문장은 그래서 나와 잘 맞았다. 그 문장들은 나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했다. 롤랑바르트가 지칭했던 '부재의 문체'가 오히려 내 부재를 채워 주었다. 누구는 카뮈의 문장을 '백색의 문체' '전라(全裸)의 언어'라고도 했다.

인간 세계에는 경멸할 것 보다는 찬탄할 것이 더 많다고 부재의 문체가 말했다. 세계는 역사라는 추상성보다 인간이라는 살아서 팔딱이는 구체성이 앞선다고 백색의 문장이 말했다. 지금 이대로의 대지에 동의하고 이곳에 뿌리내리는 것만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전라의 언어는 말했다.

겨울 내내 난 카뮈의 이러한 문장들을 훑으며 내 군더더기를 털어버리려 했다. 거추장스러운 자아의 장식들, 끝없이 달라붙는 거짓 욕망이며 생에 대한 자만, 혹은 결핍의 부스러기들.

겨울의 작업을 끝내고 나니 난 아주 홀가분해졌다. 10대부터 내 생애의 풍토를 자욱하게 감싸던 형이상학적 결락감이 다소 해명되었다.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다 물 밖으로 나온 혹등고래가 신선한 공기를 힘껏 마신 것 같았다.

내 육체의 살갗에 안기는 햇살과 바람이 민감하게 느껴졌고, 발가벗은 채 지중해의 코발트빛 맑은 물에 잠기듯 내 머릿속은 투명해졌다.

봄이 짙어지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말할 때 가장 좋은 것은 가볍게 말하는 것'이라는 카뮈의 각성을 나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최대한 많이 느낄수록 잘 사는 것임을 내 육체로 알아갔고, '사랑(삶)은 구체적이다'라는 나만의 말도 하게 되었다.

'삶이란 가벼이, 구체적으로, 이 땅에 동의하는 것'이라는 한마디를 찾기 위해 난 수 십년의 세월을 열에 들뜬 채 에둘러 왔다.

이번 봄에는 별빛들이 와 닿는 까마득한 시간보다도 지금 내 눈앞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의 시간이 더 아득하고 아련했다. 이제 내 현실의 중력이 가벼워지고, 내 모든 부재의 시간과 공간이 채워질 것 같았다.

나는 이 봄에 영원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에 봄의 시간과 한편이 되려 하였다. 더 오래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만지며, 길게 포옹하고 싶었다. 시선이 멈출 때만 사랑이 완벽한 순간임을 알았기에 난 이 봄을 더 가까이, 더 오래 함께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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