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6.01.19 15:05:16
  • 최종수정2016.01.19 15:05:37

장정환

에세이스트

김일성대학 출신의 간첩이 잡힌 것은 내가 산사에 도착하기 바로 한 달 전이었다. 고향 인근 사찰에서 간첩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곳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대입 재수공부를 핑계로 찾은 산사는 촛불로 밤을 밝혀야 했고, 주지스님과 공양을 챙기는 젊은 보살과 어린 아들, 떠돌이 객승만 있던 그야말로 단촐 하다 못해 적막강산이었다.

간첩이라니, 난 내가 사건의 중심에 있을 뻔한 사실에 흥분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숨죽여 들었다.

산짐승도 잠든 깊은 밤, 쩌렁쩌렁 산이 커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때 깜빡 초저녁 곤한 잠이 들었던 젊은 보살은 건넌방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에 잠이 깨었다. 삐삐거리는 금속성의 소음은 여느 자연의 소리와는 달랐고 감각적으로 심상치 않은 소리임을 직감했다.

아기를 들쳐 업고 10리나 되는 어둡고 험한 산길을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면서 내려왔고 곧바로 군부대에 신고했다. 군인과 경찰들이 사찰을 에워싸고 확성기로 자수하라는 소리를 질렀을 때 엘리트 출신 간첩은 끝까지 저항하며 목을 자해하다 생포되었다.

35년 전의 일인데도 산사의 기억이 강렬한 것은 그곳에 평범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로 난 몇 번 더 그 산사를 찾았다.

20대의 어느 겨울이었다. 다시 찾은 산사 입구의 풍경은 선명했다. 눈으로 뒤덮인 산길 초입의 민박집에선 굴뚝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하얀 눈밭에 점처럼 놓여있던 그 집은 수묵화의 배경처럼 고적했으나 군불로 데워진 아랫목이 금세 연상될 만큼 훈기가 느껴졌다.

따끈따끈한 온돌방에서 밤을 보낸 뒤 창호지 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간결한 여백의 풍경, 개울물의 얼음을 깨서 세수를 한 후 먹었던 고봉밥상의 산나물무침, 그 모든 눈 내린 풍경과 아침내음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 때 난 산사는 오르지 않고 입구만 맴돌다 되돌아왔었다.

예전에 떠돌이 스님이 내게 한 말 때문이었다. "젊은 친구, 잿빛을 동경하지 말게, 나도 자네처럼 젊을 때 이 잿빛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땡중이 되었네, 며칠 쉬다가 내려가게나." 그 때 그 말이 내 뇌리를 맴돌았고 스님의 말을 꼭 들어야만 될 것 같은 위엄이 내 발길을 돌리게 했던 것이다.

그 후로 십년쯤 지나 가족들과 함께 인근에서 온천을 하고 산사를 다시 찾았다. 그 사이 오솔길밖에 없던 길은 산 중턱을 헤집어 임도를 놓았고, 커다란 주차장이 생겼고, 전기불이 들어왔고, 안팎으로 산바람이 넘나들던 창호지 문들이 커다란 유리문으로 바뀌었다. 전의 주지스님은 큰 절의 주지로 자리를 옮겼고, 젊은 보살은 간첩신고 보상금으로 질박한 인생을 접고 어린 아들과 함께 이미 절을 떠났다.

젊은 한 때, 수만 광년 전의 별빛이 산중턱의 내게 쏟아져 내릴 때 난 언제나 이곳을 그리워하며 살 수밖에 없으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 순박한 산사도, 한 때 순수하던 나의 청춘도 속세의 때로 변색되었다. 난 산의 오솔길을 내려오면서 실로 착잡한 마음으로 산사의 곡절과 삶의 변절을 헤아리고 수긍하려 했다.

난 그로부터 오랫동안 산사를 잊고 살았으나 그 산사의 아침햇살, 바람내음, 새소리, 계곡물, 밤에 일렁이던 촛불의 불꽃만은 내내 그리웠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