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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내가 살았던 집은 20개도 넘는다. 어린 시절 내 집이 아닌 부모님 집에서 살 때부터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의 하숙집까지 합치면 30개는 거뜬히 넘을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나서는 참 많이도 옮겨 다녔다. 언젠가 큰 아들이 이전한 주소가 전부 나오는 주민등록등본을 떼고는 한참이나 신기하게 바라보았을 때 나 역시 그 이사 횟수에 놀랐다.

30여 년 동안 수많은 집을 옮겨 다녔지만 그래도 결혼하고 처음 들어간 신혼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7살, 지금의 막내보다 어린 나이에 안동의 고택에 두 평 남짓의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여닫이 창호지 문을 열면 넓은 흙 마당이 있고, 장독대가 보였고, 빨랫줄이 마당을 가로질러 걸려 있었다. 아내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봉당에 다소곳이 앉아 해바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비 내리는 날 코끝에 훅하고 스며드는 흙 내음을 좋아했다.

장롱하나 화장대 하나 달랑 놓여있는 좁은 방에서도 아내는 세상을 다 가진 부자처럼 만족해했다. 하지만 겨울날 그 집은 얼마나 추웠던가.

함석으로 지붕과 담장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부엌엔 날선 칼바람이 사정없이 스며들었다. 큰애의 기저귀를 빠는 동안에도 빨래는 꾸덕꾸덕 얼어붙었다.

안동 5일장이 서는 어느 날, 아내가 하얀 털이 눈부신 스피츠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 난 "그놈을 어떻게 키우려고 사가지고 왔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걱정하지 마, 내 밥 나눠 먹일 테니까"라며 아내는 한껏 몸을 움츠리며 눈을 흘겼다. 아내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머나먼 객지에서 무척이나 외로웠을 터였다.

하지만 그 여리고 예쁜 강아지는 얼마 뒤 남의 집에 보내야만 했다. 밥과 김치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그때, 잔반이 있을 턱이 없고 더구나 사료까지 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젊은 시절의 신혼집은 춥고 가난했지만 내 평생 동안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집으로 기억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속상했던 집도 있었다. 새로 이사를 한 집에 큰 애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었다. 아들놈은 집주인 아들과 서로 세 발 자전거를 타겠다고 수시로 티격태격 싸웠고, 집주인 아들은 걸핏하면 울음보가 터졌다. 급기야 몇 달 만에 우리 가족은 쫓겨나다시피 집을 옮겨야만 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수없이 이사를 하며 집을 옮겼다.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던 해로부터 꼭 10년 만에 내 집의 소유권자가 되었을 때 아내는 꼭 집들이를 해야 한다며 단호하게 선언했고 서울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밤새 먹고 떠들며 웃어대었다.

지금은 신혼시절 단칸방이 있던 고택을 몇 채나 가질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지만 그 단칸방에서의 시간들이 가장 애틋하고 그립다. 그것은 집이라는 것이 그리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반증이리라

이제 나의 집은 작은 방에 책을 가득 쌓아놓고, 계절마다 꽃과 바람이 바뀌는 것을 느끼며, 늙어가는 아내가 어느 때고 따뜻한 햇볕을 쬘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게다가 집안의 전등을 한두 개 켤 때쯤, 자식들이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서 기대치 않았던 저녁밥상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내게 집은 자잘하게 살아가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도란거리며 쌓여가는 곳, 그 이야기가 그리워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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