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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아침 일찍 강가의 새들이 짹짹거리니 나도 덩달아 명랑해집니다. 창밖의 새소리에 잠이 깨어 그 새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갑니다. 강가라 그런지 많은 종류의 새들이 눈에 띕니다. 떼를 지어 군무를 펼치는 작은 새들이 있는가 하면, 백로처럼 홀로 강가를 배회하는 새들도 있습니다.

나도 저 새들처럼 세상 속을 천진난만하게 날갯짓하며 맘껏 날아오르던 때가 있었겠지요. 지금의 나는 강가에 홀로 유유자적한 백로와 닮은 듯합니다. 세상을 힘차게 비상하는 새가 아니라 그 비행을 관조하는 새의 모습이겠지요.

그러한 내 모습이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흘러간 세월을 가늠하니 잠시 비감해지는군요. 그 시간의 거리만큼 마음이 허허로워 편지를 씁니다.

실로 오랜만에 쓰는 편지입니다. 밤새 펜으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아침이면 보낼까 말까 망설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 속엔 그때의 그리움, 뜨거움, 설렘, 막연함, 아쉬움들이 뒤섞여 나를 성급하게 키워내던 것들로 넘치기도 했지요.'

여기까지 적고나니 편지를 보내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릴 때의 선생님, 주례를 서 주셨던 대학교수님, 내 절친했던 친구들, 수 십 년을 동고동락했던 회사 선배들, 그 누구라도 내 편지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수없이 흘러간 시간동안 난 한통의 편지도 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워하는 거리만큼이 그 사람'이라고 하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과연 그리운 그 사람으로 남아 있을지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지난여름의 태양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그 뜨거움 아래서 곡식들은 알곡이 여물고, 나무들은 훌쩍 키가 자라고 단단해 갔을 테지요. 들판의 사과와 배들은 그 과육 속에 풍요의 단물을 비축하고, 이제 그 달콤한 몸을 내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한 때의 맹렬함도 여려지고 지나간 계절을 조용히 반추할 시간입니다. 고요하게 나를 생각할 때가 된 것입니다. 난 도저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지금 평화롭습니다.'

또 여기까지 쓰고 육필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딱 박혔다. 편지는 온몸으로 쓰는 글, 내 몸속의 피와 내 체온을 간직한 팔과 손, 내 가쁜 숨결의 날숨까지 합쳐진 글자 하나하나가 모여 진정한 마음의 편지가 될 거였다.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자 이 세상은 편지를 잘 쓸 것 같은 사람과 편지를 안 쓸 것 같은 사람,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과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아직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누군가를 잊지 못해 한 줄의 편지를 써내려갈 때, 밤새워 적어간 편지를 결국 부치지 못하고 눈물로 찢어버리더라도 그 편지를 쓰는 동안만큼은 순연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선생님, 계절이 가을빛 황갈색으로 변해갑니다. 제 삶도 가을로 접어든 듯합니다.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기를 지켜주신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내내 평안하세요.'

'그리운 친구야, 70년대의 학창시절, 그때 우린 무척이나 외로웠고 아파했지. 인생이라는 오랜 여행을 해오면서 얼굴 한 번 못 봤구나. 다시 만나서 서로의 여행담이나 하하 웃으며 들어보자꾸나.'

이 가을에 난 그렇게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리운 사람을 더 그리워했고, 그리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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