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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을 길러 봐야겠다. 사춘기 이후 콧수염이 나고부터 지금까지 3일 이상 면도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여태껏 수염을 깎지 않으면 안되는 줄 알았다.

회갑이 지난 이 나이에 튀고 싶어 하는 신세대들의 패션 아이템도 아니고, 무슨 정치인들처럼 대통령에 출마하려는 이미지 과시용도 아니지만, 난 이제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콧수염 하나쯤은 편하게 길러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불현듯 생각하게 되었다.

은퇴를 앞두고 정해진 일에서 벗어난 지금, 회사 동료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예속의 규칙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며, 용모단정한 자세로 다소곳하지 않아도 된다. 난 더 이상 뻔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그 뻔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이라는 자각이 나를 부추겼다.

그런데 왜 하필 콧수염 기르기란 말인가. 평생을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사람의 소심한 일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혼자 웃음을 짓고 말았다. 고작 콧수염 하나로 자유 정신을 논한다는 것에 난 스스로 가소롭게만 여겨졌다. 콧수염이라니.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찰리 채플린이나, 히틀러의 칫솔 수염은 단연코 내 스타일이 아니다. 체모 수가 적어 카이저 스타일은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콧수염이다. 콧수염을 생각하다 보니 관우 스타일의 풍성하고 긴 수염을 가진 사람들을 우러러보게 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의 점잖은 콧수염 정도는 나도 무난히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콧수염뿐만 아니라 복장에서도 내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에 갓 입사할 무렵부터 몇십 년 동안 난 항상 검정이나 청색 계열의 양복 정장을 입고 다녔다. 매일 아침 빳빳하게 다려입은 흰 와이셔츠를 입고 항상 다른 넥타이를 골라 매고 출근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 장 넘는 와이셔츠를 다리는 일은 아내의 큰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 정장을 입지 않았다. 노타이에 재킷 하나로 지내다가 그나마 청바지 차림으로 바뀌었다. 청바지를 입고부터는 다른 옷을 입기가 거북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해도 그 편안한 차림을 난 포기할 수가 없게 되었다.

편안함은 나의 규범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해주었다. 의복 하나가 내 상상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내 행동반경을 제한한다는 것을 알았다. 넥타이를 매고 성장을 한 날은 틀에 맞춰 나를 제어했으나 자유복을 입은 날은 내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고 내 생각과 행동은 분방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콧수염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제는 어느 곳에도,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고 통제받고 싶지 않다는 내심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워지겠다는 다짐, 혹은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일종의 마음 선언일 것이다.

오늘 아침, 함께 입사하고 같은 날 퇴직하는 전력거래소의 친구가 카톡방에 한 줄의 글을 올렸다. "거친 바다에서 30여 년 동안 한전/거래소라는 큰 배를 타고 가다가 중간 기착지(배로서는 기착지이나 나로서는 종착지)에서 내려야 하는 기분이랄까, 그동안 배에 갇혀 지냈으니 내려서 또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 가야죠."

난 지금 클라크 게이블 같은 콧수염을 기른 채 늙어가는 친구들을 만나는 내 노년을 상상한다. 강원도 속초에서, 전라도 어느 섬에서, 경상도 산골에서 어떤 친구는 니체의 철학자다운 콧수염을 다듬을 것이고, 누구는 헤밍웨이식의 덥수룩한 턱수염을 너그럽게 쓰다듬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파르스름한 면도 자국을 반짝이며 스킨로션 냄새 풍기는 도시인 친구를 더 많이 만날지도 모르지만, 난 늙어가는 모든 친구가 새로운 생의 창조자로, 자유와 야성의 본능으로 다시 펄펄 뛰어다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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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