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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우뚝 선 동네 어귀를 지날 때마다 난 걸음을 멈춘다.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에 대한 경외만이 아니다. 내 본능의 몸짓이다. 머무르고 싶게 하는 포근한 넉넉함이 날 그 자리에 붙들 뿐이다.

오래된 나무가 있는 길은 느리게 걷게 된다. 걸음걸이가 더딜수록 나무의 품은 더욱 깊어진다. 사계절을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나무, 봄에는 연둣빛 새순, 여름이면 녹음, 가을에는 붉게 물든 나뭇잎, 겨울엔 눈 쌓인 하얀 꽃을 선사하는 나무는 나를 때때로 신성한 감정으로 이끈다.

얼마 전부터 줄곧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즉 엘제아르 부피에, 쉰다섯 살의 남자를 떠올렸다. 메마른 황무지에 30여 년간 나무를 심은 남자, 황량한 폐허를 향긋한 바람이 불고, 맑은 샘물이 넘쳐흐르는 울창한 숲으로 일군 '부피에'를 생각할 때마다 즐거웠다. 새롭고 근사한 뭔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 가슴이 마구 부풀었다.

이러한 마음이 든 것은 영화 '트루먼 쇼'의 세트장 같은 이 도시를 떠나려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행정수도의 소망으로 출범한 이 도시에 내 욕망을 보태 남보다 먼저 발을 들였다. 이곳은 내가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인구 7천 명에 불과한 허허벌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30만 명의 도시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 몇 개만 달랑 들어섰던 초창기 신도시는 대형 중장비의 굉음만 들렸다. 매일 먼지가 풀풀 날리던 도로는 출근할 때마다 길이 바뀌어 날 헤매게 했다. 본의 아니게 난 꼬박 10년 동안 이 도시가 성장해온 역사의 생생한 산 증인이 되었다.

행정도시의 경계를 기점으로 도시의 모습은 확연히 구분되었다. 경계 테두리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난 '트루먼 쇼'의 규격화된 세트장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행복한 모습만 연출해서 올리는 작위적인 삶의 또 다른 버전 같았다.

계획된 도시, 규범과 통제로 움직이는 쾌적한 선진도시의 화려한 위용은 아파트 가격을 부추기고, 곳곳에서 부나방처럼 찾아온 사람들로 들끓게 했다. 주변의 지인들이 날 부러워했으나 난 '트루먼 쇼'의 짐 캐리처럼 이 도시가 벽으로 둘러싸인 듯이 답답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시골에 마당 넓은 30년도 넘은 낡은 농가를 마련했다. 원래는 산으로 가고 싶었으나 현실의 제약이 날 그 선에서 타협하게 했다. 허술한 집은 대충 황토로 바르고, 낡은 지붕은 새 기와로 바꾸고, 바람 드나드는 벽체는 나무판자로 덧대어 수리할 것이다. 오랜 집이 30년을 버텨왔듯이 앞으로의 30년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지난 10년간 남이 만든 완벽한 계획도시에서 살면서 내가 그리워한 것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이었다. 불완전한 것이 사랑스럽고, 완전하지 않은 것이 인간적이었다. 허술하고 아슬아슬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진실과 살아 있음에 대한 감흥은 내가 만들어내는 사람 냄새나는 자연스러움에서만 비롯되었다.

난 시골집 마당 가득 아들 나무, 며느리 나무, 손자 나무를 심을 것이다. 물론 키 큰 느티나무는 내 몫으로 남길 것이다. 그곳을 가족들이 힘들고 외로워질 때마다 언제나 안길 수 있는 곳, 정겹고 따스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가꿀 것이다.

인위와 인공의 장소를 떠나 자연 속으로 나아가는 길은 나를 설레게 한다. 비록 불편하고 소박할지언정 그 불완전이 주는 평화가 나는 더 사랑스럽다. 그곳엔 나의 손길이 필요하고, 나이테마다 우리의 이야기를 품은 느티나무가 더 높이, 더 푸르게 자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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