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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설날이 지나고 나면 연(蓮)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농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눈 덮인 얼음위에 거름을 뿌리는 법을 작년에야 알았다. 얼음이 녹으면서 자연스레 물속으로 거름이 스며들기 때문에 물속에서 일하는 것보다 내 몸이 덜 고달프다.

연(蓮)은 백악기 후기인 약 1억년 전에 출현한 식물이니 우리 인류보다 먼저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물속의 진흙에서 싹이 트고, 새벽이 되면 첫 햇빛을 받아 오색꽃을 피우고 밤이 되면 꽃잎을 닫는 연꽃은 소멸과 탄생을 반복하는 주기적 특성으로 예부터 신성하게 여겼다.

연꽃은 아름답고 향기롭기도 하지만 씨앗이 천년 후에도 꽃을 피울 수 있으니 신비로운 식물이다. 일본에서는 2천년 전의 씨앗에서 싹을 틔웠고, 미국의 과학자들이 500년 묵은 중국의 씨앗을 발아하는데 성공했으며, 우리나라 함안에서는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씨로 화려한 연꽃을 피웠다.

연의 질긴 생명력은 지상에서 가장 단단한 열매로 일컬어지는 '연밥'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연방이라고도 불리는 연밥은 씨앗이 얼마나 딱딱한지 싹이 튼다는 게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조선시대 강희안은 우리나라 최초의 화훼 서적인 '양화소록'에서 '연씨는 갈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고 적어 잠자는 연씨를 깨우는 이치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특질로 연은 역사적으로 창조, 재생, 비옥, 다산을 상징했다. 고대 이집트나 인도 등에서 신화나 벽화에 등장하기도 했고, 석가가 마야 부인 주위의 오색 연꽃 위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백제금동대향로에서도 연꽃을 확인할 수 있으니, 연꽃은 천 년이 지나도 꽃을 피우는 불생불멸, 인간이 동경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꽃을 칭송하는 글로는 중국 북송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이 으뜸이다.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속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으나 겉은 곧고, 덩굴지지도 않고 가지를 치지도 않은 채, 꽃향기가 멀리 퍼질수록 더욱 청아하다.'

그렇지만 찬사는 찬사일 뿐, 연농사만큼 고된 작업도 없다. 수천 평방미터의 밭을 못으로 만들기 위해 둑을 쌓고, 둑 위에 부직포를 덮고, 흙을 파내고 물을 대는 일은 연농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만이 무모하게 시작할 수 있다. 세찬 비바람에 날려가는 부직포에 흙을 덮기 위해 수차례 둑 위에서 굴러야 하고, 종근을 심고 연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허벅지까지 빠지는 뻘밭을 헤집고 다녀야 한다. 덕분에 난 몇 번이나 허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를 짓겠다고 입사 동기는 오래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경건한 실천가인 농부의 길로 나선 것을 난 진심으로 격려해 주었다. 유기농 재배를 한다고 농약을 치지 않은 울퉁불퉁한 감귤을 친구로부터 선물 받았을 때, 난 그 감귤을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햇볕과 바람과 폭풍우와 땀으로만 키운 감귤을 한 알씩 먹을 때마다 난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귤을 입에 넣었다.

나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친구의 마음으로 1억 년이 넘는 연의 생명력을 기억하며 올해의 농사를 시작하려 한다. 불가에서 활짝 핀 연잎은 조화로운 우주를 상징하고, 잎자루는 우주의 축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천 년이 지나도 향기로운 생명을 이어가는 연농사는 내게 생의 비결을 깨우쳐 주는 수행이며 인간으로서의 내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다.

더러운 물속에 있어도 맑은 본성과 청정한 자태의 연꽃을 피우듯이, 생명의 신비를 지키고 키우는 일은 고되지만 달콤하다. 우주의 경이에 공모하는 내밀한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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