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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오영식 B.B.S 충북연맹 회장

드라마 같은 삶 오뚝이처럼 일어선 봉사왕

  • 웹출고시간2018.12.16 20:35:01
  • 최종수정2018.12.16 20:35:01
[충북일보] Big Brother and Sister. B.B.S 연맹은 이를 '결연 친선활동'이라고 말한다. 의역하면 형제와 자매가 모인 큰 울타리로 볼 수 있다. 올해 74세의 오영식 B.B.S 충북연맹 회장은 청주에서 아주 유명한 사업가다. 오 회장의 사업수완은 충북을 넘어 서울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오 회장은 그동안 숱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늘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삶의 과정에서 숙명처럼 받아들인 봉사의 정신은 그를 지탱해준 원동력이 됐다. 오 회장은 지난 12일 제18회 도민대상 시상식에서 선행봉사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오 회장을 만나 그의 드라마 같았던 삶의 궤적과 봉사의 정신을 들어봤다.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4살 때 청주로 왔다. 중학생 때는 전교 1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성적이 좋다보니 부모님이 서울로 진학하길 원해 서울에서 시험을 쳤지만 1차에서 떨어졌다. 1차에서 떨어지면 2차에서는 세광고나 청주농고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청주상고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면접 당시 학교에서 원소기호와 천부인권사상에 대해 물었다. 대답을 아주 잘 했다. 우수한 중학교 성적과 면접을 잘 치른 덕분에 상고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엇을 했는지

"졸업 후 강원도 춘천에 있는 육군 포병부대에서 측지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측량을 위해 야외에서 주로 지내다 보니 부대에서 시달리는 것 보다는 편하게 보냈다. 전역 후 다시 고등학생이 됐다. 입대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서다. 고교시절 공부도 좀 했지만 싸움도 잘했다. 졸업을 몇 개월 남겨놓지 않은 연말,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했다가 퇴학을 당했다. 그리고 입대했다. 다시 학교에 가기 위해 군 생활 3년 내내 열심히 공부했다. 제대 후 고등학교 3학년 야간부에 들어갔다. 야간부 2개 반 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예비고사에 합격했고, 청주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다. 대학교 3학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학교를 그만두고 1972년부터 11년간 청주시청에서 근무했다."

◇공직을 그만 둔 이유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 사직하고 1981년 ㈜대동상사(현 윈스테크)를 설립했다. 최초의 사업으로 벽 속에 넣는 단열재(우레아폼)를 납품하고 직접 시공을 했다. 사업이 잘 됐다. 7년가량 단열재 사업을 했고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LG하이새시 생산에 나섰다. 지금도 청주 북이면에 있는 공장에서 LG하이새시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직원은 60여 명이 있으며, 지난해 매출 390억 원을 기록했다."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아내와 아들 둘이 있다. 첫째 아들은 리드종합건설 사장으로, 둘째는 윈스테크 기획관리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교회 장로인 우리 부부와 두 아들 모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34년 전 BBS연맹 지도위원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B.B.S란 'Big Brother and Sister'의 약자로 형제·자매 맺기 운동을 뜻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간 도와준다. 지도위원을 하다가 3대 청주 상당지회장을 맡게 됐다. 취임과 동시에 3천만 원의 후원금이 들어왔다. 3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갑자기 생기자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다. 고민 끝에 사재 1천만 원을 보태 더 많은 학생들을 돕기로 했다. 지원을 받는 학생들이 17명에서 99명으로 늘어났다. 또 아파트 3채를 후원받아 기증했다. 덕분에 집이 없는 학생들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열심히 봉사를 하다 보니 중앙연맹 부총재를 맡게 됐다. 또한 충북도연맹 회장도 됐다. 당시 도 연맹은 운영이 안 될 정도로 침체돼 있었다. 이에 각 시·군의 구성원들을 모두 만나 조직 활성화를 이뤘다. 4년만 하려고 했던 도 연맹 회장은 현재까지 24년째 맡아오고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어땠나

"당시 청주 낭성에 4천 평 규모의 엘지 하이새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충북에 아파트를 짓는 13개 업체에 모두 납품을 할 정도로 호황이었다. 전국 판매량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인해 100억 원가량 부도를 맞았다. 채무가가 지은 아파트를 인수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해 사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최악이었다. 부도를 며칠 앞두고 LG 사장 및 전무를 만나 사실대로 털어놨다. 나는 'LG제품을 많이 판 것밖에 없다.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으니 공장을 모두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능력을 인정한 LG는 채권관리팀을 가동해 사업을 살릴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LG에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단 이익금의 10%는 LG에 주기로 했다. 38억 원에 달하는 밀린 자재비를 상환하기 위해서다. 하이새시 생산 공장은 있었지만 지역에는 아파트를 짓는 업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로 갔다. 포스코와 우림, 중앙하이츠빌 등의 관계자를 만나 그들을 설득했다. 결국 그들과 사업을 하게 됐다. 또한 당시 발코니 시장에서는 하이새시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동시에 갖게 됐다. 개인에게 줘야 할 30억 원가량의 돈도 4년6개월 만에 모두 갚았다. 이후 사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대성고등학교 총동문회장 등을 맡았다. 특히 지난 2014년 대성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맡은 뒤 대성고가 고교축구연맹에서 지난해와 올해 1등을 했다. 축구부에 버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문들의 성금 1억 원과 사재 1억 원을 들여 리무진 버스를 구입해 기증했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도민대상은 어떻게 수상하게 됐나

"청소년들을 위해 34년간 봉사활동을 해왔지만 수상을 위해 어느 곳에 신청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도민대상에 신청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너무도 많았다. 이에 신청을 하게 됐고, 봉사 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어깨가 무겁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4년 전 아파트 시행을 맡았을 당시 분양에 대한 걱정이 컸다. 걱정을 가득 품고 모델하우스 오픈 1시간 전에 현장을 방문했다. 놀랍게도 대기자 줄이 100m 이상 이어졌다. 그 장면을 보면서 환희를 느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명은 무엇인가

"남자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 신의를 중요시하고 있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한 번 약속하면 끝까지 지키는 소신이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도민대상 수상자 입장에서 도민들께 당부의 말씀은

"부족한 사람이 봉사 대상을 받았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 34년간 봉사를 해오며 어려운 청소년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을 도울 국가 예산은 한정돼 있다. 기업인들이 나서야 한다.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돼야 한다. 아이들이 잘 자라야 국가도 성장할 수 있다."

/ 대담=김동민 편집국장·정리=신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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