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1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봄비가 내리고 있다. 메마른 대지가 촉촉이 젖는다. 이제 머지않아 봄 햇살을 받은 흙들이 따뜻해지고 풀씨들이 잠을 깨어 알록달록한 색깔의 잎들을 내 놓으리라. 연둣빛 행렬이 달려오고 만개한 꽃들이 내뿜는 생명의 향기는 대지의 맥박을 고동치게 할 것이다.

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모두다 살을 에는 모진 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고 더구나 너무나 많은 생명의 스러짐을 가까이에서 목도했다. 지진과 해일로 수만명의 사람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휩쓸려가는 장면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고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땅속으로 생매장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절벽처럼 덮쳐오는 해일을 피하려 우왕좌왕하던 사람들과 강아지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물살 속으로 사라지는 TV속 장면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수한 죽음 앞에 속수무책인 나는 도대체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것의 무상함에 한참동안 허탈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답게가 아니라 동물처럼 죽는다'는 헤밍웨이의 말이 실감났다. 릴케도 '말테의 수기'에서 사람들이 기성품의 삶을 살듯이 죽음 또한 개성 없이 몰가치하게 대량생산된다고 하지 않던가. 죽음도 대량으로 양산되는 몰개성적인 시대라지만 죽음은 개별성이다. 일시에 한 장소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죽는다고 하여도 살아온 과정이 다르면 같은 죽음일 수는 없다. 인간은 삶과 죽음 앞에서 단독자일 뿐이다.

톨스토이의 중편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을 맞는 인간에 대해 가장 통찰력 있게 그려낸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작품이다. "여러분, 이반일리치가 사망 했다는군요". 시작부분부터 평범하게 서술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유한성을 당연하게 상정한다. 이반은 법대를 나와서 막연하게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았으나 오래전부터 아내에겐 무관심하며, 자식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커다란 아파트에 살며 고급 장식이 붙은 가구들로 집안을 가득 채운다. 그는 성공적인 기회를 잡아 고등법원 판사의 자리에 앉는다. 출세를 위해 인맥을 동원하고 승진과 성공을 도와줄 사람들만이 그의 친구이다. 가끔 노선을 선택하기 위해 "시내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책을 읽기도 한다.

"이반이 일에서 얻는 기쁨은 자만심이 주는 기쁨이었고 사교에서 얻는 기쁨은 허영이 주는 기쁨이었다. 카드놀이를 하면서 얻는 기쁨이야말로 진짜 기쁨이었다". 그러다가 마흔다섯 중년에 병으로 쓰러진다. 이제 그는 죽을 것이다. 그의 동료는 이반이 죽으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판공비까지 나올 것으로 계산하며, 그의 부인은 연금이 줄어들까 걱정한다. 딸은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의 결혼 계획을 망칠까 염려한다. 살날이 며칠 남지 않은 이반은 자신이 삶의 시간을 허비했고, 겉으로는 품위 있으나 황폐한 일생을 살았음을 인식하고 괴로워한다. 그의 슬픔은 주위사람들이 사랑한 것이 그의 지위이지 진짜 그가 아니었다고 느끼는 자괴감이다. 그가 판사였기에, 부유한 아버지이자 가장이었기에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이반은 창피해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부도덕한 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의 가치를 사회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속물적 삶을 성실히 살아왔을 뿐이다. 사회적 지위만을 쫓아 살아왔으며 타인의 평판에만 귀 기울이고 물질적이며 자기중심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에 닥쳐서야 모든 게 바니타스(Vanitas, 헛되도다)라고 깨닫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진정성이 찾아온다. 어느 누구도 나대신 죽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사는 곳곳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을 뿐 삶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양도불능 일회성의 삶에서 진정한 생명의 기쁨은 '나'에 대한 의미 있는 확신이며 행동이다. 이 봄,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며 물기에 젖은 목련꽃 어린 눈이 생명의 빛으로 반짝이는 것을 바라본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