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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개츠비처럼 웃고 싶었다. 영원한 보증을 약속하는 미소, 당신에게만 집중하고, 모든 것을 당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미소, 당신이 원하는 대로 믿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겠다고 보증하는 미소, 난 그런 미소를 닮고 싶었다.

마치 수만 마일 밖의 흔들림을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삶의 약속에 대한 고도의 민감성과 미래의 희망을 감지하는 섬세한 감각으로, 낭만적으로 웃을 줄 아는 개츠비를 난 닮고 싶었다.

젊은 한 때의 어느 겨울, 왁자한 술집을 몰래 빠져나와 붉은 신호등 앞에 나 홀로 멈춰 섰을 때, 난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 손을 잡고, 똑같은 호흡과 보폭으로 걸음을 맞춰서 건널목을 건너간다면, 이 세상이 더는 두렵고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날 난 개츠비를 찾았다. 개츠비가 칠흑의 밤에 부르르 몸을 떨며 가닿으려 했던, 부두의 끝에서 조그맣게 반짝이는 초록 불빛을 나 또한 밤새 바라보았으면 했다.

중년의 어느 늦은 저녁, 허름한 카페에서 식어버린 커피를 남긴 채 찬바람이 부는 어두운 거리로 발을 내딛었을 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지리멸렬하고 옹색했다.

복잡한 생의 한 가운데에서 무수한 헛발질의 열정이 부질없음을 알고 난 후, 난 또 다시 개츠비를 만났다.

그렇게 오랜 세월 나와 함께해온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캐츠비'는 내 평생 3번 이상 읽은 책 목록의 윗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개츠비를 떠올리며 서가에서 이 책을 꺼낼 때면 난 언제나 설레면서도 가슴 한 곳이 아려왔다. 개츠비를 읽는다는 건 나를 만나고 나를 독해하는 거였다. 생의 덫과 상처, 우스꽝스러운 무모한 헛발질과 헛된 희망, 생의 주체 못할 기쁨과 아픔이 오롯이 담겨있는 이 책은 내게 생의 비밀을 해독하는 마술책과도 같았다.

"우리 이제 오후에 뭐하지? 그리고 내일은, 그리고 또 삼십 년 동안은?" 데이지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내게 다그치는 질문이었다. "그래, 나는 오후에 뭘 할 거지? 내일은, 또 그 다음날은 도대체 뭘 하지?"

나를 향해 끝없는 질문과 대답을 이어가게 했던 이 책 속의 개츠비가 오늘도 그리워졌다.

수능 시험장을 나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상기된 얼굴을 보았을 때, 천진하고 미성숙한 얼굴에 배어있던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이 눈부셨다. 그 청춘들은 제 인생을 얼마나 화려하게 초월하고 싶을까? 벅차고 뜨거운 미래의 사랑을 꿈꾸며 그들은 얼마나 달콤한 인생의 낭만을 고대하고 있을까? 그들은 저마다의 특별한 삶의 신화가 시작되는 시기, 의미심장한 계절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청춘의 건널목을 지난 후 생의 뒤안길에 서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상투적이고 속물스런 세상의 뒷모습과 깨지기 쉬운 이상과 낭만의 덧없음, 휘청거리게 하는 공허한 순간들이 생의 곳곳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누구나 고유하게 고독하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지금, 발그레하게 부끄러워하는 얼굴과, 다소 불안해하며 머뭇거리는 걸음걸이로 달콤한 낭만의 매혹에 떠는 젊은이들의 몸짓을 부러워한다.

비록 잃어버리고 깨질지라도 청춘이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꿈과 환상, 때 묻지 않은 이상과 희망만으로도 그들은 지금 '위대' 하다. 그들의 맹목적이고 무모한 열정이 마침내 사랑의 이름을 얻게 될 때, 또 한 사람의 '위대한 개츠비'가 태어나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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