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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책 198쪽을 봐,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내 마음이 거기에 있어". 그녀가 쪽지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8년째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 여자 주인공, 죽은 여자 친구의 유언에 따라 이름 모를 책의 198쪽을 찾아 헤매는 남자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198쪽은 잃어버린 추억이며 찾고 싶은 생의 비밀이다. 기억의 책장을 넘기며 비밀의 단서를 찾는 동안 OST가 잔잔하게 흐른다.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영상이 펼쳐지며 사랑으로 상처를 입은 두 남녀가 또 다른 사랑을 되찾으며 아픔은 치유된다. 달콤 쌉쌀한 장면들이 새로운 추억의 풍경으로 전환되며 영화는 파스텔화처럼 감미롭게 막을 내린다.

휴일동안 청주대 출신인 윤성희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그 남자의 책 198쪽' DVD를 보았다. 영화는 무미한 일상을 전복과 일탈과 희망으로 욕망하고 있다.

원작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녀는 8년째 도서관에서 일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책을 읽지 않았다. 5시 30분이면 퇴근을 했다. 저녁을 먹고, 일일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고나면 어느새 10시가 되었다. 그녀는 벽에 슬기 시작한 곰팡이를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그녀는 "따분해"를 연발하고, 남자친구는 "니가 지겹다"며 떠나갔으며, 이름도 없이 "저기요"라고 불린다. 어제와 오늘이 형용사 없이 건조한 동사만 존재하는 하루하루이며 자동기계마냥 권태로운 익명의 시간을 보낸다.

소설 속 그녀처럼 대개의 현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출근하여 일하고 피상적인 만남과 의미 없는 잡담과 습관화된 식음으로 하루를 채운다. 집에 돌아와서는 텔레비전의 소음을 매일 같은 양만큼 흡수한다. 나도 모르게 프로그램화된 로봇처럼 생활한다. 어제도 똑 같았고 내일도 같은 일을 되풀이 할 것임을 안다. 모두가 호모사피엔스이기 이전에 호모코티디아누스(Homo quotidianus, 일상인)로 영위한다. 줄거리 없이 파편화된 인생들이 하품 나는 나날을 견디고 있다. 시시하고 지루하며 지리멸렬해서 공허하다. 하지만 이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체제에 강제된 이 일상이 안락하며 다행스럽다고 여긴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안하며 열등감을 느끼며 자학할 것인가. 아쉽게도 일상의 무대장치는 영화처럼 음악이 저절로 흐르지 않으며 그림 같은 풍경들이 이유 없이 스쳐가지 않는다. 달콤한 우연과 극적인 반전이 개입하지 않으며 그다지 감동적이지도 축제적이지도 않다.

일상은 그저 견딜 수 있을 만큼 버겁기도 하고 헐거울 뿐이다. 그래서 앙리 르페브르는 자신의 육체와 욕망, 시간을 타인에게 저당 잡히지 말고 일상 속에서 스스로 축제와 혁명을 복원하라고 조언한다. "일상이 하나의 작품이 되게 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미 우리 모두는 작가이며 작품이다. 자신을 읽고 타인을 읽고 세계를 읽는 것, 그래서 나를 표현하며 세계를 해독하는 언어를 발견해 내고, 의문부호 투성이의 삶에 하나의 느낌표를 찍을 때, 우리는 마침내 의미를 포획하는 작가가 된다. 이러한 명징한 감탄부호가 모여 하나의 책, 영화, 그림, 음악으로 불리는 자신만의 인생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 남자의 책 198쪽'은 더 이상 풀 수 없는 비밀로 남았다. 그러나 모든 의미 있는 작품은 그 자체로서 수수께끼이며 열쇠이기도 하다. 모두가 현실의 통속성으로 투항하는 그 속에서, 홀연히 수채화 같은 풍경을 찾아나서 어느 따스한 사랑과 닿고, 가슴 뛰게 하는 충만한 의미(意味)의 파동이 음악이 되어 흐를 때, 그 순간만은 먼 후일에 진짜로 살았던 부분으로 읽혀지며,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추억의 페이지로 남겨진다. 하여 새롭게 써내려가는 '당신의 책 199쪽'이 촘촘히 마무리된다. 또 하나의 비밀을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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