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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영화관의 불이 다 켜지고 객석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때조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없을 때도 있다.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를 다 읽고 책장을 덮을 때 그랬다. 지난 열흘간 맛있는 과자를 먹는 것처럼 정말로 야금야금 읽었다. 가끔씩 멋진 영화를 보듯이 좋은 책을 만날 때 난 잠시나마 주인공과 함께 살아간다.

흑단색 피부의 아프리카 소녀 라일라는 거친 물결에 휩쓸린 보잘 것 없는 물고기였으나 긴 여정 후에 스스로 황금 비늘로 번쩍이는 물고기임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내겐 깊은 여운이 되어 남았다.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 한 장 한 장을 아껴가며 꼭 활자를 씹어 먹듯이 읽었다. 삶을 대하는 시선, 인간을 대하는 시각이 다양하고 깊은 책들은 나를 전율케 하고 긴장하게 한다.

보들레르가 파리의 변두리나 공원의 오솔길, 고독한 사람들의 외딴방이나 은밀한 장소를 기웃거릴 때 나도 함께 두리번거린다. 그가 거니는 곳에는 '좌절된 야심, 이루지 못하고 만 영화, 상처 난 마음, 파란만장하고 폐쇄된 넋이 주로 찾는 산책로'가 있다. 나도 이 산책로를 따라 함께 거닐며, 이들의 격정적인 마지막 탄식이 있을 때 나도 따라 한탄한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카지노 안에서 우린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가, 도시의 방마다 어둠처럼 내려앉은 저마다의 고독, 교묘하게 저지르는 탐욕, 억압하는 자들의 폭력은 겸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낸다. 사소한 상처마저도 격심한 생의 통증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라일라는 달랐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는 말로 라일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햇살에 눈이 부신 어느 날, 텅 빈 거리에 먼지가 날리며 검은 새의 고통스런 울음소리가 들릴 때 라일라는 영문도 모른 채 한 남자에게 유괴 당했고, 누군가에게 팔렸고, 그 때부터 모진 탁류의 세상을 표류했다.

시도 때도 없이 던져오는 세상의 올가미 속에서도 라일라가 씩씩하게 살아갈 때, 난 이 흑진주 같은 소녀의 강인한 생명력은 그녀의 순진무구한 천진함 때문이며,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몸과 마음 때문이며, 까만 속살 아래 흐르는 뜨거운 피, 누더기가 될 때까지 지니고 다닌 프란츠 파농의 한권의 책 때문일 거라 여겼다.

책을 읽는 동안 이따금 아스피린이 필요하게 만든 너무 슬프거나 너무 뜨거운 소녀의 이야기는 마침내 끝이 났다. 처음에는 라일라의 상처에 아팠으나 나중엔 밝아졌다. 암전 후에 나타나는 멋진 무대처럼 인생의 가장 어두운 곳에 숨겨있던 라일라의 놀라운 희망을 나는 이제 믿었고 기다리게 되었다.

난 라일라가 거닐었던 재즈의 도시며, 집시의 거주지, 수많은 올가미를 피해 버둥거리며 내달리던 문명의 뒷골목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살아가는 덫투성이 세상에서, 라일라의 천진함과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나 또한 버티게 할 것이다. 그녀의 기억이 아득해져도 내겐 위안으로 남아 샛별처럼 반짝이던 그녀의 눈동자를 그리워하리라.

세상의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빛나는 황금물고기로 당당히 살아남은 그녀의 이름은 까만 밤, 라일라. 라일라의 밤이 지나니 환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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