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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나는 사람이라는 영장류이지만 내가 더 믿는 것은 영장류가 아닌 개다. 11년간 함께 살아온 우리집 개 '해피'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장기간의 여행을 포기한 것도 해피 때문이다. 매주 다니던 등산 대신 집에서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것도 해피 때문일 것이다. 내가 퇴근할 시간만 되면 해피는 지난 10년간 매일 현관 앞에서 목을 빼고 날 기다려 왔다.(2013년 1월 31일자 본보 칼럼 '해피가 날 해피하게 한다.'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문제는 해피가 내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출근하는 날과 집에서 쉬는 날을 기가 막히게 분간한다는 사실이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은 오후 6시, 즉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기다리기 시작하는데, 휴일에 운동이나 등산을 위해 집을 나서면 문을 나설 때부터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현관 앞에서 나를 계속 기다리는 것이다.

10시간이건 하루건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기다리는 해피의 고행의 시간(?)을 내가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게 된 것이 내겐 난감한 고민거리였다.

그때부터 웬만하면 해피를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자전거도 같이 타고, 산책도 같이 하고, 가벼운 등산도 같이했다. 돌아와서는 함께 샤워하고 낮잠을 잘 때는 배위에 올려놓고 잤다.

쇼핑매장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애견용품점이 되었고 해피 간식거리를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올 때마다 아내는 기가 막혀했다. "내거는 없어?" 라고 물을 때마다 난 머쓱해하곤 했다.

한때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힘들어 할 때가 있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계산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셈이 만족치 않으면 가차 없이 사람을 배신하고 물어뜯었다. 하찮고 비루한 영장류의 이중성을 봐버린 후에 느낀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날 슬프게 했다.

그때 해피는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내가 조금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장난질을 해왔다. 공놀이를 하자며 보채기도 하고, 무릎위에 기어올라 그 해맑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기운을 내라며 날 바라보고 컹컹 짓기도 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거였다. 충성을 넘어 절대적인 숭배, 신뢰,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 한마디 없이 몸으로 느끼게 해준 해피에게 내가 되돌려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해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서로가 교감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뿐이었다.

지난주 한 건의 신문기사를 보고 난 경악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5살가량의 수컷 말티즈를 생매장한 사건이었다. 생매장된 강아지 사진을 보니 울컥 목이 메었다.

난 확신한다. 살아난 말티즈가 자신을 생매장한 주인을 다시 만날 때, 그 개는 말라터진 혀로 주인을 핥고, 굳어버린 꼬리를 흔들며 변함없이 사랑을 줄 것이다. 이성과 오성을 가졌다는 인간, 그 알량한 영장류의 믿음을 한 점도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숭고한 존재가 아니며 개로 태어났다고 해서 비천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난 이 세상의 개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세상의 개들아, 개만도 못한 비천한 인간을 위해 더 이상 애쓰지 말고, 제발 오래오래 숭고하게 살아 남거라. 멍! 멍!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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