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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35톤, 5톤 대형 트럭으로 일곱 대 분량, 한 사람이 평생 먹는 음식의 양이라고 한다. 쌀이 83가마니, 돼지고기 18마리, 닭고기 490마리, 채소 7톤, 과일 4톤, 계란 2만개, 기타 등등.

"네가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을 수첩에 적어 다니던 나는 이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언제, 누구와 어떻게 먹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아찔해졌다.

이 자료대로라면 먹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정치도 경제도 결국엔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사람살이도 밥살이고, 사람냄새도 밥 냄새와 다르지 않았다. 밥처럼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서 이 새해 아침에 밥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게 좋은 추억, 아프고 나쁜 기억들도 밥과 함께 만들어졌음을, 그리하여 함께 수저를 든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가장 아리게 그리운 기억은 어릴 적, 해질 녘까지 동구 밖에서 동무들과 깔깔대며 놀고 있을 때 "저녁밥 먹어라"며 큰소리로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 어둑한 호롱불 아래 어린 오남매가 코를 훌쩍이며 옹기종기 머리 처박고 정신없이 퍼먹던 따뜻하고 구수한 밥 냄새였다.

돌을 던지면 쨍그랑하며 깨질 것처럼 온 세상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방학만 되면 아버지는 기차를 타고, 또 걸어서 두어 시간이나 걸리는 외가에 날 데려다 주셨다.

아! 외할머니는 왜 그랬을까·

외가에만 가면 언제나 외할아버지와 겸상으로 사랑채에 따로 밥을 차려주셨다. 가마솥에서 금방 퍼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과 그 당시엔 귀했던, 말랑말랑하게 익은 계란찜과 부드러운 조기찜이 매일 상에 올랐다.

틈만 나면 슬쩍슬쩍 주머니에 넣어주시던 곶감이며, 군밤, 약과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난 부러움으로 기웃거리던 외사촌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고, 겨울방학 내내 과식으로 배탈이 났었다.

외가에서의 정월 대보름날도 잊을 수가 없다.

밤늦도록 쥐불놀이를 한 후 파김치가 되어 어느 집 사랑방에서 고만고만한 또래들과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오곡밥을 퍼오고 땅속에 묻은 장독에서 살얼음 살짝 언 무김치를 훔쳐왔었다.

어둠속에서 까만 눈들을 반짝거리며 낄낄대며 함께 먹던 동무들, 수많은 집에서 가져온 오곡밥과 김치 맛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고, 그래서 먹고 또 먹어대었다.

내게 초등학교 6년간의 겨울은 신나게 먹고 항상 배탈이 났으나 언제나 즐거웠다.

대학생 신분으로 결혼한 신혼 초엔 돈도 없고 먹을 게 없어 일주일 내내 라면만 끓여 먹은 적이 있었다.

"느끼하니까 파를 많이 넣어야 해"라며 아내는 호호 웃으며 아예 파국을 끓였다. 그러나 그 라면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지금은 아무리해도 그때의 라면 맛을 재현할 수 없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게 최악의 음식은 단연코 돈까스였다.

시골에서 청주로 유학 온 나를 위해 친구가 밥을 사 준다고 했다. 지금은 사라진 흥업백화점 시식코너였다. 꼬깃꼬깃한 돈을 탈탈 털어 돈까스 2인분을 시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접시에 달랑 내온 희멀건 죽, 숟가락으로 죽을 퍼 먹으면서 친구가 야속했다. "친구야, 다른 걸 시킬걸 그랬다. 이건 양도 적고 별로인데......" 멍하니 쳐다보던 친구가 꺽꺽대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이 친구야 이건 크림스프야. 이제 나온다구, 임마. 어휴 촌놈".

그렇게 밥은 내 추억과 품성이 되었고 내 삶이었다.

언제부턴가 의무감으로 차리고 습관으로 먹어온 밥상들, 나폴레옹이 전투식량으로 만들었다는 통조림처럼 전투적으로 먹어온 차가운 밥상들을 떠올리며, 소박하지만 순정이 듬뿍 담긴 따스한 밥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이제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함께 따끈한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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