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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9.11 15:37:49
  • 최종수정2013.09.11 15:37:49

장정환

수필가

오래전에 무소불위의 대통령들이 쉬어가던 청남대 별장을 거닐다가 팔이 부러진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본 적이 있었다. 견고한 청동상이었기에 이상하여 자세히 살폈다. 급기야 혼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조악한 플라스틱 재질에 청동색을 입혀 모양만 그럴듯하게 만든 조잡한 장난감 같은 조형물이었다, 차라리 장난감이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혼자 황당해 하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청주의 랜드 마크라고 하는 가로수 길을 지나 서청주 관문을 들어서면 우뚝우뚝 고풍스런 유럽식 성채를 흉내 낸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야 성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감탄하는 나이어린 조카의 호기심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러브호텔이 백설 공주가 잠을 자는 곳이 아님을 설명하기는 난감한 일이었다.

키치(Kitsch)의 사전적 의미가 훌륭한 예술 작품과 달리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일컫거나, 가짜 혹은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사이비를 뜻한다면 요샛말로 '싼티'냄새 물씬 풍기는 유치찬란한 가짜를 지칭하는 말일테다.

키치라는 말이 18세기말 산업혁명이후에 탄생한 부르주아들의 문화적 허영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이 용어의 성분을 짐작케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신흥계급인 부르주아들은 그들의 허영심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고급예술을 감별할 안목이 없는 상태에서 돈으로 그들의 취향을 장식한 것이다. 엘리트 스타일을 흉내내온 저속한 거짓치장은 조악한 대량 생산 모조 예술품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근대화를 일군 우리는 서구의 원형을 흉내 내기에 바빴다. 우리의 압축 성장은 가장 급속한 서구화였고, 각종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 모든 분야가 흉내 내기의 키치적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셈이다.

졸부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 번도 읽어볼 일 없는 원어로 된 장서들로 저택 가득히 장식하는 일이며, 의미도 모르는 값비싼 명화들을 벽마다 줄줄이 거는 일이었다.

TV 드라마마다 원어책과 명화들로 채워진 기업체 회장댁이 매일 나오며, "아버지 오신다" 대신 "회장님 오신다"는 대사가 당연시되어 반복되어진다. 한 가족의 가장이 '아버지'가 아니라 '회장님'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TV에 나와서 유치하게 웃기며 유명해진 철없는 20대 개그맨이 공인(公人)으로 불리는 코미디 같은 현실이 키치가 아니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B급 문화, C급 통속문화가 나름의 존재가치로 인정받고 대중문화가 현대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키치적인 태도와 의식이 아무런 저항과 반성의 여과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내겐 다소 두렵게 여겨진다.

키치란 진짜처럼 보이는 예술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키치는 끈질긴 생명력과 달콤한 자연스러움으로 위장하여 세상 모든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키치적인 정치인, 키치적인 예술가, 키치적인 학자, 키치적인 종교인과 지식인이 진짜처럼 득세하는 세상이고, 그들이 키치적인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식의 이데아가 보이지 않는 세상, 원본의 복제에 불과한 현실세계 속에서 원본의 복제도 아닌 '복제의 복제가' 진짜인양 행세하는 지금의 세상을 혼란스럽게 여기는 것은 내가 아둔하기 때문일까·

내가 염려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거짓으로 뒤쪽에 숨어 있는 진실을 가리는 일이다. 키치적인 양심으로 키치적인 인간이 되어 스스로에게 속는 일이며, 결국에는 키치적인 자아를 착각하여 '나'라는 원형(原形)까지 잃어버리는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악한 장난감을 청동상으로 둔갑시키지 않는 진실이며, 공주가 사는 성채로 현혹하여 어린이들의 환상까지 유린하는 거짓을 그만 두자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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