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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건축은 식물처럼 연약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고 건축학개론을 펼치자 맨 먼저 이 말이 나왔다. 추위와 더위, 맹수의 공격, 즉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개론서다운 설명이다.

자세한 주석까지 달려있는 걸 보니 이 말을 한 건축가 기디온은 건축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게 틀림없다.

이 말에서 두 가지 명제를 도출할 수 있겠다. 첫째, 인간은 식물처럼 연약하다. 둘째, 건축은 그런 약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난 이 개론서의 첫 장을 읽으면서 인간은 연약하나 건축을 하는 인간은 결코 연약하지 않다는 다른 명제를 첨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건축은 식물처럼 연약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단, 건축을 하는 인간은 연약하지 않다."

지난봄에 새 사옥에 입주한 6층의 내 사무실 절반은 유리창이다. 블라인드만 걷으면 곧바로 파란 하늘과 푸른 산의 풍경이 그림 액자처럼 맞닿아 있다. 건축학에선 이것을 픽쳐 윈도우(picture window)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건물의 엔벨로우프(덮개, 외피)에 있는 구멍을 '개구부'라고 하는데 이것은 건물의 눈, 코, 입과 같은 것이다, 개구부는 크게 문과 창을 말하지만 벽이나 지붕, 바닥까지도 확대할 수 있다. 건물의 개구부가 어둡고 막힌 공간은 마치 눈과 코가 막힌 것과 같다고 개론서는 덧붙인다.

내 사무실 책상을 기준으로 왼쪽과 뒤쪽이 전면 유리로 개방되어 있으니 건축학적으로 난 90도 분량의 공간적인 자유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내게 공간적인 자유를 부여해준 '개구부'를 통해 지난 4개월간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시간마다 파란 하늘 사이로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흰 구름, 바람에 일렁이던 푸른 나뭇잎, 창을 사선으로 내리치던 소나기의 빗줄기였던가.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바쁘게 걷는 사람들, 엄마 손을 꼭 잡고 아장거리던 아기들의 모습이었던가.

내가 개구부를 통해 매일 유심히 바라보던 것은 정작 건물을 짓는 인부들이었다. 농협사옥의 신축현장이 코앞에서 보였다. 내가 7시 조금 지나서 사무실에 출근하면 그들은 벌써 한참이나 작업 중이었다.

처음 그들을 봤을 때는 지하층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수십 미터 위 타워크레인에서 철근이며 목재가 옮겨졌다. 그들은 외부비계, 내부비계, 간이비계, 사다리비계 등을 외줄로, 겹으로, 쌍줄로 수백 개씩 엮어가며 망치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는 수십 대의 레미콘 차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철근 콘크리트 한 층이 올라가 있었고 벌써 6층을 올리는 중이었다.

태양은 모든 지상의 것들을 태워버릴 기세였다. 난 가끔씩 인부들이 걱정되어 창을 내다보았다.

긴팔 작업복차림의 허리춤에 연장통을 주렁주렁 매단 인부들이 하얗게 표백되어 한줌의 소금처럼 증발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쿵쾅대는 망치질은 계속 이어졌고 그들은 공사현장을 묵묵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난 여름 내내 덥다는 소리를 감히 한마디도 못했다.

난 건물이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드는 거라고 막연히 여겼었다. 하지만 건물은 인부들이 흘린 땀방울과 심장소리 같은 쉼 없는 망치질, 그들이 꿈꾸는 소박한 이야기, 강인한 일상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난 숨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제대로 된 건축학개론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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