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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칼 마르크스'를 털어내고, '영국 노동운동사'를 털어내고, '전통시대의 민중운동'을 털어냈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먼지를 털어낸 후 잠시 책장을 둘러보았다. 30년도 넘게 나와 함께 살아온 책들이었다. 이 케케묵은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껏 보살피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지난해 여름 비오는 날에 이사를 했다. 이삿짐을 풀면서 책들은 책장에 그대로 처박아두다시피 방치되었고, 그것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지 몇 달이 지났다. 비에 젖은 얼룩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책들을 바라보는 것은 고역이었고 읽고 싶은 것을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주제별·저자별로 분류하여 차곡차곡 책장에 다시 집어넣으면서 문득 재미있는 발견을 하였다.

내가 읽어온 책들이 시기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거였다. 난 어떤 주제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분야나 관련부문에 대해 온 관심을 집중하고, 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면 그 작가의 책들을 몽땅 사서 읽는 스타일이다.

'빈곤의 종말'을 읽었다면 '부의 미래'나 '부의 분배'를 함께 읽고,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읽고 난후에는 '오래된 미래'를 동시에 읽었다. 철학은 '강신주'이고, 미학은 '진중권', 경제학은 '장하준', 문학평론은 '김현', '신형철'이라는 식이다.

나의 독서 편력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 '어깨동무'를 읽던 때와 하이틴 시절 '데미안'같은 세계명작류의 책을 읽던 시기는 건너뛰자.

80년대 초 암울했던 대학시절은 단연코 사회과학서적이 주를 이루었다. 이데올로기나 공산당사, 민중이나 노동운동 등 당시의 답답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책들뿐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만 강의하고 매번 휴강하던 시절, 최루탄과 구호가 난무하던 대학 캠퍼스에서 의식이라도 깨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직장인으로 출발한 90년대는 세계화의 흐름과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거셌던 시기였다. 시대 트렌드나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앨빈 토플러'나 '피터 드러커'의 책들, '문명의 충돌', '문명의 공존', 글로벌 관련서적 등 거시적인 책들을 주로 읽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2천 년대는 독서 변화의 폭이 가장 심했던 시절이었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때였고 모든 기업이 도산 직전이었다. 특히 난 사회적으로 가장 어깨가 무거운 40대였다. 혁신이나 변화를 부르짖는 책들이 대다수였고, 잔혹한 경영인 잭웰치의 '끝없는 도전과 용기', 조지 소로스의 저서, '1초 경영'같은 무시무시한 책들을 끊임없이 읽어내야 하는 시대였다.

그 당시엔 지식경영이나 윤리경영, 식스시그마경영 등 의무적으로 공부해야할 책들도 많았다. 그 만큼 사회전체가 위기의식으로 움츠려져 있던 때였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무한경쟁의 팽배로 많은 직장인과 자영인들의 피로도가 극도로 높아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나의 관심분야는 노자와 장자같은 동양철학과 불교로 바뀌어져 있었다. 소로우의 '월든'이나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등 느림을 지향하는 쪽에 몰두해 있었다.

같은 제목의 책들이 두 권 이상씩 있는 것도 있었다. 니체의 책, 이성복의 시집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등은 오래되어 신간으로 다시 샀거나, 번역자가 달라서 새로 구입한 것들이었다. 내가 아끼는 책이었다.

50대인 지금은 인문학과 시집들이 서가를 채우고 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더하기가 아닌 뺄셈이 필요한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가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나를 되돌아봤다. 털어내야 할 것은 책속의 먼지가 아니라 내 정신과 마음속 티끌임을 알았다.

정리를 마치고 내게 언제쯤이면 이 모든 책들이 불필요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책 한 권을 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혼자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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