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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행색이 말쑥한 신사였다. 그 남자는 큰 자루 하나를 들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자루가 불룩한 걸 보니 청소를 시작한지 꽤 된 것 같았다.

'드디어 공무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구나'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무래도 공무중이 아닌 것 같아 다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곳 세종시에는 매일 공사 중이고, 지나치는 곳마다 공사구간이 있었다. 며칠이면 뚝딱 공사를 마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곳은 몇 달째 질질 끌기도 했다.

계획도시답게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홍수를 대비한 대형 저류지가 많았다. 지난여름에 이사 온 이후로 우리 집 앞 저류지는 매일 공사 중이었다.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본 저류지의 모습이 나날이 바뀌어갔다. 나무를 심었다가 뽑고, 다시 심었다. 어느 날은 트랙을 만들었고, 며칠 지나면 배드민턴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중장비들이 출현하여 저류지 수로를 다시 뜯어 고치기도 하였다.

수개월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곳곳에 쌓여있는 공사 잔해물들이며 방치된 쓰레기들이었다. 빨리 공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공사가 준공된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공사만 끝났을 뿐 쓰레기더미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이다.

관공서 감독자들이 공사 준공 승인을 할 때 현장을 제대로 둘러보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면 쓰레기 정도는 사소한 것이라 확인 대상에서 제외되는지도 몰랐다. 매일이 공사 중인 이 계획도시를 산책하면서 모든 공사구간에서 똑같이 목격하는 현상들이었다.

언제 주민들 모임이 있으면 청소하는 날을 정해서 다 함께 청소를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간혹 흉물스런 쓰레기들을 보기가 힘들어 나라도 쓰레기를 주워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곤 했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스스로 줍지를 못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혼자 줍기가 쑥스러웠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어느 날의 말쑥한 신사도 아파트 창가에서, 산책길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신사는 먼저 청소를 시작했고, 난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봄비가 촉촉이 적셔진 저류지의 잔디밭을 바라보며 홀로 청소하던 그 신사가 생각났다. 단 한사람의 소박한 손품만으로 이렇게 쾌적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데 더 이상의 무슨 교훈이 필요할까 싶었다.

옛날 어린이들이 소학에서 가장 먼저 배우던 '쇄소응대(灑掃應對)'가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게 한 옛 선현들의 가르침이었다.

훌륭한 공부보다도 사람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말이었다.

수백 년 전에 퇴계에게 보낸 남명 조식의 편지를 읽으면서도 가슴이 뜨끔해졌다. "물 뿌리고 비질하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하의 이치를 말하고 헛된 명성을 훔쳐서 세상을 속인다."고 했다.

비질만 잘해도 마땅히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 부처의 말과 일맥상통했다.

어느 고전학자는 '청소란 공간에 대한 배려'라는 멋진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믿음이 가는 사람은 자신과 주변이 잘 정돈된 사람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과 남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내 얼굴을 잘 보기 위해서 먼저 거울을 깨끗이 닦아야 하듯이, 나 자신과 주변을 단정하게 살피고 보살피는 일이 자신과 주변을 아끼고 배려하는 것일 터였다.

청명이 지나니 말 그대로 하늘이 점점 맑아졌다. 봄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그치니 그사이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산책길에 얼굴을 부딪치는 찬바람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꽃샘바람이 봄기운에 들떠서 활짝 피어나는 꽃만 바라보지 말고, 무심코 지나치는 흙과 뿌리를 살펴보라는 뜻인지도 몰랐다.

쇄소응대(灑掃應對), 물 뿌리고 비질한 후에 사람을 대하듯, 먼저 나부터 살펴 단정히 한 후에 예의 바르게 화사한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고, 꼭 꽃샘바람이 매섭게 나무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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