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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경칩은 봄이 땅에 오는 절기이고 청명이 되어야 비로소 사람에게 온다는데, 수목원의 숲길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에 생명의 봄기운이 차고 넘친다.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니 발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진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양옆으로 나란히 늘어선 황톳길을 걷는다. 나무의 새싹과 황토가 토해내는 감미로운 봄 향기가 잠시 가쁜 숨결을 쉬게 한다.

숲속에는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생기가 감지된다. 맹아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고, 한껏 귀 기울이면 고요함 속에 느껴지는 놀라움 가득한 함성이 있다. 그것은 생명들이 내는 소리,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내밀한 몸짓이다.

인적미답의 벌판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생명력의 울림, 풀이나 나무들이 보여주는 무언의 수동성이 실상은 얼마나 끈질긴 능동성을 감추고 있는가.

바람 따라 일렁이는 나무들의 떨림과 햇빛에 맞춰 온몸으로 응답하는 초록빛은 정녕 하늘과 대지의 삶이 오롯이 합일된 것일 터이다.

생명 있는 것들이 가진 포식성을 과감히 거부하는 숲속의 존재들- 너희들의 꿈은 오로지 햇빛과 물과 바람만으로도 이루어지는구나.

산다는 것이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라는 생생한 감각을 이 숲속에서 다시금 실감한다. 살아있음의 정직한 절박함을 간결하고 소박한 이 숲에서 느끼는 모순형용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숲속에는 번잡한 인공세계의 아우성과 상투성이 범접할 수 없고, 삶의 순결성을 일깨우는 원체험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는 모든 자연이 '스스로 있는 존재'임을 드러냄으로써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니체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멀리 있는 존재"라고 했던가· 난 정말로 나 자신과 가장 가깝고 싶었다.

젊은 시절 언젠가,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한마디를 접한 이후 난 내 한계에 대해서 뼈저리게 고민하게 되었다.

도저히 해독되지 않는 세상과 삶이 내 언어의 한계 때문이란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 삶이라는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텍스트를 읽고, 쓰고, 또 읽는 수밖에 없었다.

텍스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그 얼마인지 모를 일이다.

모진 나날을 읽고 쓰다 보니 동서고금의 무수한 선현들의 앞선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 또한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쳐 왔던가를 공감하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발터 벤야민조차 언어가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했으며, 보르헤스는 아예 이 세상을 도서관으로 여기며 살지 않았던가.

나 또한 하나의 텍스트를 익힐 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씩 더해가는 듯했다. 서가에 늘어가는 책만큼 비례해서 내 언어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신산하고 유장한 이곳의 삶에서, 내가 읽은 텍스트의 두께가 나와 세상과의 간극을 더 이상은 메꾸어 줄 수 없음을, 이 숲속의 나무들이, 풀들이, 그들의 향기가 깨우쳐주고 있었다.

산림박물관에서 바라본 거목의 나이테, 수백 년의 연륜 자체가 나무들의 언어가 되어버린 나이테는 그것들이 살았던 역사, 지도, 생태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차라리 나무들의 언어는 무여열반(無餘涅槃)처럼 위대했다.

연륜이 나이테가 되어 스스로 선명한 언어를 만들어 내는 나무들, 자신의 상처를 오히려 향기로 내뿜는 나무들의 숲속을 거닐며, 내게 삶은 아름답고,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아직도 아름다워 이 세계를 더 이상 증발시킬 수 없다는 카잔차키스의 외침을 읊조렸다.

난 이 봄날의 숲에서 나와 가까워졌다. 나와 멀리 떨어져 아득했던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고 나와 친밀해졌다.

난 햇빛과 물과 바람만으로도 풍족한 나무들 앞에서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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