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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생경한 풍경을 만날 때 내 말은 꼬이고 발걸음은 엇나갔다. 난 꼬이고 엇나가고 미끄러지는 낯설음의 설렘 때문에 여행을 했었다.

지난 한 해는 많은 여행을 했고 올 한해는 여행을 하나도 안했다. 그 덕에 꼬이고 어긋나고 미끄러지는 일이 없었고 내내 안녕했다.

지난해 추석 명절 때는 서해안 모항에서 검붉은 일몰을 봤고 올해 추석 그 시각엔 방안에서 잠을 잤다. 먹고 자고 TV보고 뒹구는 안락을 택했다. 거의 일주일을 꼬박 채운 마지막 날에 하나의 의문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찾는 것이 대답일까· 질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뭘까?'

그러고 보니 내가 살아가는 이 한번뿐인 삶이 유한하기에 난 마구 욕심을 부렸고 마음도 급했었다. 난 아무런 수식이 필요 없는 명쾌한 답변, 맑은 샘 같이 투명하고 장식 없이도 식별할 수 있는 선연한 확신, 명징한 증거들로 실마리를 주는 생의 대답을 찾아 질문하고 또 물어왔다.

목성처럼 별이 되지 못한 행성이 되지 말자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질량이 컸더라면 스스로 빛을 내는 진짜 별이 되었을 거라는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그러니 질량을 더 키워서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재촉했었다.

하나 그것도 고달픈 일, 더 쉬운 일은 삶의 온기 속에서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떠도는 일이었다. 시스템에 따라 살아가는 일은 나른하고 평안할 터였다. 질문할 필요도 없고 대답할 이유도 없이 흘러가는 삶, 유유자적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날들, 내가 여행하지 않아도 TV속 인물들이 대신 여행해주고, TV나 휴대폰이 대신 책 읽어주고, 스스로 웃지 않아도 TV가, 라디오가 대신 웃겨주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TV속 명사들이 생각을 정리해서 알려주었고, 모든 사안마다 반듯하게 방향을 정해주었다. 그저 따분하고 심심하면 수십 개의 채널만 리모컨으로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21세기 문명은 행복의 안내서만 따라가면 되는 자상한 세상이 되었다.

이미 잘 굴러가고 있는 현실의 이 엄청난 권위에 복종만 하면 난 흔들리지 않을 거다. 똑같은 주파수를 맞추기만 하면 만물은 서로 공명한다지 않던가. 이미 세팅된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는 거다. 힘들여서 지도를 찾아볼 일도 없다. 샛길로 빠지면 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불편함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살았고 그러다가 번쩍 정신이 들었다.

테니슨의 시, '연밥을 먹는 사람들(The Lotus Eaters)'을 찾아서 읽었다. "얼마나 달콤하랴, 눈을 반쯤 감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 이윽고 살포시 찾아드는 비몽사몽!"

비몽사몽에 균열이 갔다. '이것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독을 품은 뱀처럼 똬리를 틀어 날 일으켜 세웠다. 테니슨은 로토스를 먹는 사람들이 "풀 더미에 묻힌 한줌 하얀 재, 청동 항아리에 든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향 이타카를 향해 험난한 모험을 이어간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떠올렸다.

꿀처럼 단 '로토스'(연실,蓮實)를 먹고 환각에 빠져 자족하던 오디세우스의 부하들, 망각이라는 환각, 안락이라는 환각, 마취의 환각, 쾌락의 환각, 익숙함의 환각, 습관의 환각을 과감히 떨쳐버린 오디세우스가 그리웠다.

자동인형처럼 쉽게 살아가는 일이 내겐 더 어려운 일이었다. 보이는 것만 보는 일이 더 힘들고, 살아가는 일에 주석을 달지 않는 날이 더 괴로웠다.

이제 나를 마비시키는 로토스를 덥석 물지 않으리라. 안이한 긍정이라는 로토스, 낯익은 습관이라는 로토스를 던져 버리기로 했다.

가을은 파랗고 또 파랬다. 가을공기가 가득 찼다. 이제 말이 꼬이고 발이 미끄러지고 길을 잃더라도 이 날선 가을 속을 거친 숨소리로 뛰쳐나가리라 다짐했다.

들뢰즈식으로 표현해서 '탈주의 정신'을 되찾기로 했다. 그리하여 다시 생의 질문과 대답들을 대질시키고, 이 로토스의 환각을 전복시키리라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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