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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에로스들이 넘실대었다. 5월의 따가운 햇살이 수천 명의 얼굴위로 쏟아져 내리고 그 얼굴에서 반사된 빛의 열기가 연록의 봄을 달뜨게 했다.

꼭두새벽부터 강원도에서 달려왔고, 부산에서 오고, 광주에서, 제주에서 왔다. 전국 각지의 정겨운 사우들이 함께 만났다.

국토의 한 중앙 운동장에서 만난 입사동기의 얼굴을 마주치자 지난 2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친구도 한때는 20대의 빛나는 청춘이었다.

3주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청량리역에서 안동역까지 내달리던 열차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내 눈에 보이는 건 온통 길가에 촘촘히 늘어선 전주와 산과 강을 길게 횡단하는 철탑뿐이었다.

전력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한 광경이었고, 중앙선 열차 안에서 느낀 그 생경함을 여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산골 오지마을에 처음으로 전기를 밝혀준 날,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홍수로 암흑천지로 고립된 단양의 어느 마을에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빛을 전하던 일, 그리고 또 있다. 2011년 9월의 전국적인 순환정전, 그 숨 가빴던 시간 또한 잊을 수 없다.

25년간 난 이 신비로운 물질, 전기를 만들고, 전기를 전달하는 일이 좋았다.

눈으로는 감히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으나 찌릿찌릿한 전기의 존재감만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였고, 양과 음의 기호를 하나로 엮는 이 에로틱한 끌림이 매 순간 나를 매료시켰다. 전기는 에로틱하게 빛으로, 열로, 강한 힘으로 내 삶을 견인하는 에너지였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사피엔스부터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덴스, 호모 파베르, 공감하는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까지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는 정의들이 그 얼마나 많던가. 여기에 난 '호모 일렉트릭스(Homo Electrics)'를 더하고 싶다.

2천500년 전 탈레스가 전기를 발견한 이후 아직까지 '전기적 인간'이 호명되지 않았다는 게 의아스럽다.

전기는 인간의 문명을 완성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전기가 인간의 본성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미립자부터 생물체에 이르기까지 전기적 떨림과 공명으로 완성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다른 존재를 끌어당기는 파동이 만남이 되고, 마주한 존재끼리의 떨림으로 생명이 탄생한다. 생명끼리의 부대낌은 시가 되고 음악이 되어 따뜻한 혈류가 흐르는 삶과 역사가 된다.

우린 조금씩 우울해져 갔었다. 자긍심과 정체성을 국가와 사회가 흔들어대는 일은 슬픈 일이었다. 생동해야할 존재를 움츠리게 하는 것은 에로스에 저항하는 '타나토스' 의 결락이었다.

우리의 삶은 에로스를 찾고 갈망하는 간절한 여정일 것이다.

그래서 우린 만나야 했고 힘들게 만났다. 동료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웃고 달리는 동안 모두의 몸짓에서 에로스의 떨림이 다시 반짝이며 빛나기 시작했다.

뜨겁게 사랑하기 위해 가슴을 여는 것은 프시케처럼 모든 것을 걸고 다가가 타자(他者)를 끌어안는 것뿐이다. 양극이 서로를 향해 꿈틀거리듯 에로틱한 연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다시 떨림으로 공명했으리라. 타나토스는 에로스의 힘을 결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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