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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에밀'은 한 인간의 완전한 교육교본이었다. 장 자크 루소를 불후의 사상가로 만든 이 한권의 책이 250년 전 서구사회를 뒤흔들었다. '에밀'이 출간되자 모든 어머니들이 육아의 바이블로 삼았고, 상류 계급의 부인들은 유모 대신 자신들의 모유로 직접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구 근대교육의 신기원이 된 루소는 자신의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조리 고아원에 버린 형편없는 모순덩어리 아버지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그 누구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가족애를 부르짖던 위대한 교육자인 그였다.

하느님의 큰형으로 불린 톨스토이, 위대한 영혼의 대문호이자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인 톨스토이는 성욕과 도박의 유혹 앞에 언제나 무방비로 굴복했다. 그는 모든 매춘부들의 단골이었고 수많은 농노나 여인들과의 혼외정사로 얻은 자식들을 끝내 부인한 비정한 아버지였다. 그의 가족사에는 원한, 배반, 야비한 복수 등 저열한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쾌락에 빠진 후 환멸과 자괴감이 되풀이 되었고, 방탕한 생활과 파탄적인 성격은 그의 부인을 심한 충격과 혐오에 빠뜨려 결국 그의 말년은 파국을 맞게 되었다.

천사 미하엘을 통해 모든 사람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간다고 말한 톨스토이였다.

지난 설 명절 동안 부푼 그리움을 안고 수천만 명이 이 국토를 가로질러 혈육을 찾았다. 가족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언제나 아늑하고 포근한 둥지였다. 부모를 찾아, 가족을 향해가는 자식들의 마음은 설레고, 자식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이 세상의 부모들은 거룩하고 성스러웠다.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건 얼마나 따스한 위안인가.

하지만 세월 따라 점점 커가는 흉터처럼 가족이 상처로 남아 아파하고 외로워하는 이들, 집밖에서 망설임과 슬픔과 절망으로 배회하는 이들 또한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았다.

결혼제도와 가족이라는 평범한 외양 뒤에 가려져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여도 외롭고, 아픈 상처를 피하려다 더 큰 상처를 만날 수도 있는 곳, 너무나 익숙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가족질서의 억압, 자신만의 욕망을 강요하는 독선과 폭력, 그리고 무관심, 이 모든 트라우마의 발원지에서 일탈하려는 탈주욕망이 동시에 상존하는 곳, 많은 가족들에게 숨겨진 또 다른 고통스런 일면이 아닐 수 없다.

문득 모든 부모들은 근원적으로 자신의 자식에 대해 속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런 동의도 없이 불쑥 이 세상에 던져 놓은 죄, 불합리하고 힘겨운 생존의 정글에 저 혼자 살아가야하는 운명을 자식에게 부여한 죄, 우연한 선택으로 부조리한 삶의 형벌을 부과한 부모는 그래서 자식에 대해 평생 죄인이고, '내리 사랑'이라는 말로 자신을 미화할 수밖에 없는 원죄를 생래적으로 타고난 것이리라.

위대한 루소와 톨스토이도 불완전한 한 인간이고, 미숙하고 탐욕스런 남편, 이기적인 아버지였기에 사랑의 책들을 만들어 참회하려 한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과 가족은 인류가 오랜 세월 검증해온 미덕의 제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쁜 가족 못지않게 너무 좋은 부모, 좋은 자식, 좋은 배우자가 되겠다는 강박 또한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아픔이 될 수도 있다.

각자가 하나의 좋은 개인,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는 곳, 각자가 중심이 되어 홀로서는 곳, 최대한의 욕망이 표현되는 곳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인 것들이 지켜지는 곳이 결혼과 가족의 공간이 된다면, 아니면 특별한 우정쯤은 어떨까. 나는 한 작가의 글을 읽다가 새로운 가족모럴의 미덕에 대해 그 해답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린 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지 못해 세상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상처가 얽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그곳에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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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