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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초콜렛이란 걸 난생 처음 먹어보았다. 진한 갈색의 네모덩이를 한입에 넣자마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고소하고 달착지근하고 약간은 쓴 그 맛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감미로웠다.

U.S.A라는 굵은 글자가 새겨진 나무 박스 안엔 초콜렛뿐 아니라 파인애플이나 햄같은 이름 모를 미제통조림들이 그득했다. 의기양양하게 초콜렛을 하나씩 나눠주는 뒷집 철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철이 형은 월남에 파견된 맹호부대원이었다. 그 형이 제대했다. 한 짐 가득 싸 가지고 온 물건들과 함께 철이네 가족은 몇 달 뒤에 서울로 이사를 가버렸다. 월남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또 다른 형이 월남에서 돌아왔다.

마을 입구의 버드나무를 쳐다보듯 고개를 치켜세워야 얼굴을 볼 수 있는 키 크고 잘 생긴 형이었다. 그 형을 볼 때마다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버드나무마냥 큰 키가 휘청거리며 위태위태했다. 훈장까지 받아왔다는 이웃집 형의 흔들리는 걸음걸이를 보며 의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기장을 쳐놓아도 달려드는 모기들 때문에 깊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었다.

얼핏 선잠에 들었던가. 어디선가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는 왁자지껄한 소리, 와장창 소리, 울부짖는 소리,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나락에서 간신히 눈을 뜨곤 그 기이한 장면들을 멀뚱거리며 바라보았다.

그 형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거친 야생동물을 포획 하듯이 서·너명이 달려들어 그 형을 붙잡고 있었고 옆엔 그의 어머니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 형은 밤마다 악몽을 꾼다고 했다. 술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고, 가끔씩 혼자 중얼거린다고도 했다.

그 형의 이야기가 삽시간에 마을 동무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형의 분대원들이 수색작전 중에 비트에 잠복한 베트공의 공격을 받았다. 동료들이 검붉은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고, 형도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이를 악물고 수류탄 몇 개를 집어 던졌다.

그때 하늘높이 솟구쳐 오르던 수십 구의 피투성이 시신들, 그 전투에서 홀로 살아남았고 밤새도록 시신들과 뒤엉겨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혼자 살아남은 자의 두려움, 그것이었다.

밤마다 아귀처럼 달려드는 동료와 적들의 모습에 견딜 수 없었고, 갈빗대 몇 대를 잃은 몸은 언제나 휘청거렸다. 총상 때문이 아니라 술 때문에라도 매일 휘청거렸을 거였다. 낮도 밤도 없이 마셔대었고 매일 밤 큰소리를 지르고는 쓰러졌다. 그 형은 점점 황폐해져 갔고, 긴 머리 찰랑이던 여자 친구도 떠나갔다.

가끔씩 길가에서 마주칠 때면 휑하니 초점 없이 흔들리는 형의 눈이 안타까웠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내 몸을 떨게 했고 나는 누군지도 모를 대상을 향해 막연한 분노를 억눌러야만 했다. 얼마 후 그 형네는 읍내로 이사를 했고 그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 잊혀져갔다.

6·25 전쟁이 끝난 지 60년 되던 날, 조간신문을 펼쳐들자 핏빛처럼 붉은 장미꽃이 넘실대었다.

잠수함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바닷가 용치(龍齒), 철조망과 참호와 초소만 즐비한 백령도에 장미꽃이 만발했다. 색색의 헝겊꽃과 빨간 장미를 예술가와 주민들, 어린이들이 철조망에 매달았다.

짐승처럼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었고, 남의 나라 전쟁에서 다치고 죽은 자들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류역사 5천년 중에서 전쟁 없이 지낸 기간이 겨우 200년 정도라니, 지금도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있을 거였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고작 전쟁의 역사였던 셈이다.

불현듯 버드나무처럼 키 큰 예전의 그 형이 생각났다. 두려움에 떨던 눈빛, 덫에 걸린 짐승처럼 울부짖던 목소리, 안타까울 정도로 몸부림치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빨강, 노랑, 분홍으로 피어있던 조간신문 꽃 사진 속에서, 한 마리 나비가 훨훨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듯 했다. 갑자기 내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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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암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병원은 어디일까? 암 치료비로 인해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보니 암환자와 가족들은 수술을 잘하면서도 진료비가 저렴하다면 최고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암 수술 잘하고 진료비가 저렴한 병원 상위 20곳'을 발표했다. 충북대병원은 대장암 부분에서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진료비(451만원)를 기록, 1위에 올랐다. 거기다 위암·대장암·간암 수술 환자가 입원기간 중에 사망하거나 수술 후 30일 이내에 사망한 경우를 나타내는 '암수술사망률' 항목에서도 1등급을 인정받아, 명실 공히 가장 저렴하면서도 암수술을 잘하는 병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외과 중 '대장과 항문' 분야를 맡고 있는 충북대 이상전(59) 교수가 그 중심에 있었다. "대장암 수술의 질은 대부분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의학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라 해도 무방합니다. 대장암 환자의 진료지침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검사, 수술, 보조치료 (항암치료, 방사선치료)에 관한 지침이 나와 있지요. 이를 환자의 사정에 맞게 적절히 적용하면 됩니다. 즉 치료에 특별한 노하우나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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