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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절이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은 기러기 행렬인양 늘어섰다" 삼국유사는 서라벌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중에서 경주 남산의 길을 걷는다.

세계사에서 신라와 로마만이 천년의 역사를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주는 늘 내게 신비의 도시였다. 온 도시가 박물관이고 유적지인 경주를 다섯 번 정도 다녀갔지만 항상 아쉬웠다.

그 아쉬움의 중심에 남산이 있었다. 산 정상이 500m도 못 미치는 남산은 동서 4㎞, 남북 8㎞에 불과하나 무려 60여개의 골짜기가 주름처럼 놓여있다. 남산은 그 골짜기의 수만큼이나 신라 천년의 꿈과 영광, 좌절을 간직하고 있다.

남산의 유적과 유물이 694개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산 전체가 박물관인 셈이다. 신라인들은 어떠한 사연으로 이 좁은 산허리와 계곡마다 150여개의 절을 짓고, 백여 기의 탑을 쌓고, 수많은 불상을 새겼던 것일까?

서남산 초입에서 마주치는 삼릉, 마치 만삭의 임신부 배처럼 솟아있는 세 개의 능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푸른 잔디를 빛내고 있다. 천년에서 이천년 전 죽음의 자리조차 아름답다는 느낌은 신라의 정신이 아직껏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한다. "경애왕은 927년 11월 포석정에서 제사를 지내고 여흥을 보내다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았다. 견훤은 경애왕을 핍박해 자살하도록 하고 왕비를 강간했다. 그리고 그 휘하들은 비첩들을 유린하고 이윽고 경애왕의 족제(族弟)를 세워 임시로 나라를 보게 했으니 이가 경순왕이다."

경주에 오기 전에 이 비감한 대목을 읽고 경애왕릉을 꼭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일정상 지척의 경애왕릉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삼릉을 떠나면서 경애왕을 자결케 한 견훤조차 왕건에 의해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된 아이러니를 생각하며 혼자 쓴웃음을 짓는다. 모든 무덤은 이 세상에 영원한 권력도, 영원한 부도, 영원한 생명도 없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알려주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들이 영원할거라 여기며 살아간다.

본격적인 산행을 하자마자 5분에 하나 꼴로 불상을 마주친다. 서남산에서 만난 불상들은 대개가 흩어지고 묻히고 잘린 몸을 다시 찾아서 제 자리를 잡아준 경우였다.

배동 삼존입상이나 삼릉 마애관음 보살상, 선각여래좌상 등 거개의 불상이 소박하고 친근하다. 천진스러운 아기처럼 미소 짓고, 풍만한 얼굴로 푸근하게 웃거나, 뒷집아저씨처럼 투박하고 걸쭉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한줌의 권위도, 어떠한 속박도 없이 틀에 박힌 격식도 갖추지 않은 불상들, 그것은 신라의 평범한 사람들, 기어코 삶을 견뎌내야 하나 웃으면서 불국을 만들며 살아가려했던 이웃들의 모습이었다.

엄격한 골품제도의 신분사회에서 범속한 신라인들은 무려 천년에 걸쳐 이 남산을 오르내리며 불상을 다듬고 석탑을 쌓고 절을 세웠으리라. 신라의 사람들은 삶의 진면목이 바로 여기, 이 순간에 있음을 이미 알았고 그래서 모두들 웃으며 당당히 살아내었다.

해설사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불상도 우리가 만들었고, 불두도 우리가 잘라서 훼손했고, 다시 우리가 복원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잘리고 두 무릎이 부서져도 지난 천 년간 위풍당당하게 앉아있던 '냉곡 석조여래좌상'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괜찮다. 다 괜찮다. 사는 건 잠깐의 무상한 꿈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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