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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1.25 18:06: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잉걸불이었다. 장작을 휘감고 타오르는 꽃불은 아름다웠다.

어릴 적 외가에 갈 때마다 팥죽을 쑤는 가마솥 옆에 앉아 한참씩 불길을 바라보곤 했었다. 이글이글 불보라가 이는 아궁이를 얼굴이 벌겋게 익을 때까지 들여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가. 혀끝에 느껴지는 팥죽의 깊은 맛, 산토끼를 잡으러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면서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다.

산이 커가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대입재수 스무 살 시절, 산사에서 맞는 어둠은 치열했으나 아득했다. 문경새재 주흘산 중턱에 걸터앉은 늦겨울 산사의 밤은 길고 깊었다. 계곡으로 해빙의 물들이 큰소리로 흘러내리는 농밀한 칠흑이었다. 그 암흑 속을 촛불로 밝히며 코밑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창작과 비평' 전집을 읽었다.

그 어둠속에서 마주한 무수한 촛불들. 촛불의 빛깔이 그렇게도 다채롭게 변할 수 있는지 그 때 알았다. 창호지문으로 새어드는 살바람, 소소리바람, 고추바람, 된바람에 촛불은 발갛게, 노랑 주황색으로, 파랗게 아니면 그 모두를 합친 빛깔로 제각각 일렁였다. 해돋이 전의 동살과 해질 무렵의 이내에도 촛불은 신비스럽게 변해갔다. 살눈 때, 소낙눈 때 다르고, 가랑비와 달구비 내릴 때 달랐다. 심지의 모양에 따라 벌불이 생기고, 방벽에 그림자를 바꾸어 갔으며 촛농의 모습을 달리 만들어 냈다. 동이 틀 무렵 만져지는 코밑의 그을음의 밀도도 매양 달랐다.

그 때 어렴풋이 알았다. 모든 출렁이는 것은 생명의 몸짓임을. 생명이란 그 존재가 타오르는 순간순간의 다른 이름임을. 생명의 연소는 매순간 그을음도 남긴다는 것을.

'나무는 꽃 피는 불꽃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은 말하는 불꽃, 동물은 떠돌아다니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인 노발리스는 노래했다.

살아가는 일은 사르는(燃燒) 것이리라. 우리 몸의 '살'은 음식을 먹고 마신 연소 작용의 결과물이고 '사르는' 과정이 삶이다. 가장 뜨겁게 불사르는 일이 '사랑'이며, 꺼져가는 불꽃은 점점 '사위어서' 사라져 가는 것, 우주에서 가장 민주적인 물질, 마침내 먼지가 되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제야 삶의 지엄함을 알겠다.

사람들 간에 나누는 긍정의 체온이 얼마나 따스한 가를, 삶의 아름다움을 생성하며 창조하는 시간들만이 수직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임을, 생의 열기가 절정으로 응결할 때 그 불꽃들이 가장 강렬하다는 것을.

게으르고 탐욕스러워 유실되고 매몰되는 시간은 가녀린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약한 촛불임을, 불을 지펴야 할 건조한 영혼이며, 그을음투성이의 보잘 것 없는 검댕이임을.

짧은 겨울해가 그 빈약한 빛을 감추면 움츠린 가장(家長)들과 사람들은 점점이 박혀 있는 그들만의 따스한 불빛 속으로 사라진다. 간혹 비틀거리는 발걸음들은 도시의 현란하고 차가운 인공조명 속으로 휩쓸리기도 한다. 도심의 불야성은 욕망의 집어등처럼 그들을 삼킨다. 거리를 적요하게 오가는 사람들, 저마다의 촛불들이 흔들리며 빛난다

모든 타오르는 것들은 결국 재가 되어 소멸한다. 덧없음의 빛이다. 그러니 쉬이 져버리는 풀잎과 나무들을 자세히 만져보고,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를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을 한 번 더 안아보라. 깨어있어 이 순간을 음미하며 영혼에 각인시키는 일, 나만의 향기 나는 촛불을 사르는 것이며 그 시간만이 활활 타오르는 불잉걸의 순간이다. 모두들 그을음 없는 아름다운 불꽃이 되시기를, 완전연소하기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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