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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가을의 중심을 향해 내 몸이 말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가장자리의 막을 뚫고 가을 깊숙이 잠입해 들어가는 느낌이 가을바람처럼 은밀하고 짜릿하다.

가을은 전면적으로 지천에 널려있다. 하늘도, 들판도, 강물도, 바람도 가을로 가득 채워졌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면서 야호 소리를 지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내 가슴은 뜨거워졌다.

가을의 중심부를 향해 내달리면서 자연은 참으로 심오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자연에는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순리가 있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야 하는 자명함이 있다.

며칠사이 해는 점점 짧아지고 밤은 또 길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탈색된 나뭇잎들은 그 허허로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들판은 점점 비어가고 낙엽은 속절없이 해지고 스러진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느끼는 방바닥의 냉기가 코끝을 시리게 하는 때이다. 코끝에 냉기를 느끼며 코를 실룩거릴 때가 되면 나는 늘 생각이 많아졌다. 아마 그건 지난 계절의 번잡한 깊이를 털어낸 가을의 투명함 때문일 것이고, 소멸되어가는 그 쓸쓸한 여운 탓일 것이다.

떨어지고 소멸하는 것들은 모두 아픔을 지니고 있는 듯 보인다. 아침 일찍 나뭇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내릴 때, 슬픔이 고여 있는 눈물 한 방울이 손등으로 뚝 떨어질 때, 한 곳에 모여 있던 물들이 낮은 곳으로 뿔뿔이 떨어질 때, 그리고 낙엽이 하릴없이 떨어져 날릴 때 우린 저릿한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봄에 싹을 내고 뜨거운 여름을 견디며 버텨온 잎, 자기가 지탱했던 몸을 스스로 버리며 떨어질 때 우린 낙엽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된다.

낙엽도 한 때는 여린 잎이었고 검푸른 잎이었다. 낙엽이 한 때 뜨겁게 사랑했던 푸른 날들의 환희와 영광, 홀로 감당하던 차갑고 모진 비바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내 숙연해진다.

오래전에 읽었던 낡은 책 사이에서 말린 단풍잎이나 노란 은행잎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가끔은 가슴이 서늘하게 젖기도 한다.

지난 날 빛나는 햇빛 속에서 반짝이던 시간들, 불길처럼 뜨겁게 태우던 순간들이 어찌 그리도 쉽게 식어버렸던가. 이제는 고대의 유적처럼 쉽게 부서지고 잊혀져버린 기억일 뿐이다.

낙엽은 한 때의 비밀스런 감정을 들추어내듯 약간은 가슴 아프고, 약간은 부끄럽게도 만든다.

그래서 우린 낙엽을 줍는다. 노란 잎, 빨간 잎, 젖은 잎, 먼지처럼 바짝 말라버린 잎, 벌레 먹은 갈색 잎, 너덜너덜해진 잎, 고고하고 깨끗하게 남은 잎, 이런 온갖 낙엽을 들여다보며 내 가슴속으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듯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낙엽은 텅 빈 알몸으로 떨어짐으로써 자신의 생을 완결한다. 그 낙엽이 있는 가을에 서면 나도, 나의 사랑도 대지 가까이 더욱 더 낮아진다. 내가 낮아짐으로써 하늘도, 그대도 더욱 높고 푸르러 보인다.

가을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빈 몸과 빈손이 주는 가벼움의 즐거움이 있다. 둥근 사과처럼 나 또한 둥글어지니 세상의 누구라도 악수할 수 있고, 그 누구라도 안아줄 수 있다.

이미 가을은 낙엽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니 더 이상 바라지 말자. 다 내어주고 자유를 얻었으니 가을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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