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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4.24 15:13: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수필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위가 뒤틀렸고 숨이 턱 막혔다. 팔다리에 식은땀이 솟아오르며 소름이 확 돋았다. 속이 메슥거렸고 토할 것만 같았다. 그대로 주저앉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회사 휴게실 방바닥에 간신히 드러누웠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내 몸을 내 맘대로 조절하지 못하다니,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대낮에 이 무슨 일이란 말일까?

한시간여동안 눈만 멀뚱거리며 홀로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몹시도 곤혹스러웠다.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두렵고 외롭고 당황스러웠다. 그 짧은 순간에 50여년의 내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쳐 갔다.

작은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실려 집에 돌아왔고 이틀 동안 죽만 먹고 잠만 잤다. '죽음 같은 잠이구나.' 중얼거리며 깼고 또 잠들었다.

자고 깨고 자고 깨고를 되풀이한 이틀 동안 눈앞에 보이는 건 사방 벽을 에워싼 숨 막히는 책들뿐이었다. 참으로 부질없는 물건들이었다.

누워서 죽음 같은 잠만 자는 내게 이 수많은 책들이 무슨 소용에 닿는단 말일까? 평생 동안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책들이 하찮게 여겨졌다.

내 곁을 먼저 떠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회갑을 치른 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이듬해 따라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어릴 때 안겨 자던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에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은 동무가 생각났다. 저녁 늦게까지 함께 깔깔대며 놀던 친구는 새벽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로 십년 이상을 난 친구엄마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 거리에서 나만 보면 넋을 잃고 망연자실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에 한 번꼴로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호방하게 웃던 지인도 생각났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는 나보다도 한참 나이가 어렸다. 투병 중에도 아내를 위해 옥상에 빨래 줄을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나에게 버리는 전선줄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새집 옥상에 빨래 줄을 건지 며칠 안지나 그는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그 빨래 줄에 하얗고 눈부시게 빛나는 아들과 딸의 옷들이 휘날리고 있을 터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이 무슨 고약한 회한이며 감상이란 말인가.

그로부터 바람처럼 일주일이 지났다. 주말이 되었고 집안이 북적였다. 다음 주에 맞이하는 아내의 생일을 미리 축하해 주는 자리였다.

직장에 다니는 큰 아들이 대학생인 동생을 데리고 집에 온 것이다. 그놈들의 예쁜 여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자리여서 나 또한 아침부터 분주했다. 난 집안 청소를 맡았고 아내는 음식장만을 했다.

촛불을 밝혔다. 노래 소리와 함께 주위가 환해졌다.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큰 아들은 명품가방 하나 힘들게 구입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평생 가장 좋은 선물을 받았다며 아내는 즐거워했다.

작은놈은 케이크밖에 준비 못했다며 다음엔 좋은 선물을 준비하겠노라고 미안해했다. 난 명품가방보다 네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멋진 선물이라고 말하며 하하 웃었다. 그 말을 하는 작은놈의 얼굴이 천사처럼 예뻐 보였고 난 행복해졌다.

지난 일주일동안 난 죽음과 생의 두 세계를 또렷하게 보았다. 그것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동시에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였다.

세상을 먼저 살다간 사람들이 대가를 치루며 남겨준 것이 지금의 귀중한 순간임을 깨달았다.

남들의 행복을 위해 나도 세상에 무언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엄연한 자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측은지심의 촉촉이 젖은 마음만으로 남은 생을 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젖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세상은 외롭지 않을 듯 했다. 더 이상 메마르고 두렵고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난 이 단순한 깨우침만으로도 세상을 다 알아버린 듯 갑자기 편안해지고 명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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