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6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엽기적이다. 아름답다. '벌 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다시 읽고 단 두 마디로 요약된 소감이다.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가 유럽 금융 붕괴를 거쳐 세계 불황의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대해 궁금해졌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지중해성 바닷바람, 황금빛으로 빛나는 오렌지향을 맡으며 이오니아해(海)와 에게해에 둘러싸인 그 대지를 종횡 무진하는 그리스 신들을 만나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리스는 고대 이스라엘의 구약성서에 뿌리를 둔 헤브라이즘과 함께 서양정신의 양대 산맥인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웠다. 근대 영국에서 구축한 민주정치를 약 3천년전에 폴리스를 통해 이룩했고, 알렉산드로스를 통해 중동과 서남아시아까지 그 영역을 망라했던 대제국이었다. 아직까지 서구 정신세계와 문화, 예술 모든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깊이가 읽는 내내 느껴졌다. 메두사의 문양이 세계적 명품 베르사체의 트레이드 마크이고, 미국의 유명한 스포츠브랜드 나이키가 그리스 승리의 신 니케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향은 수천년을 횡단하여 지금껏 우리도 모르게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시공을 가로지르는 그리스의 신화 중에서 유독 엽기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신이 내리는 형벌의 영속성이다. 눈앞에 물과 음식이 있어도 다가가기만 하면 달아나버려 영원한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는 탄탈로스, 밤에는 간이 돋아나지만 낮에는 독수리에게 산 채로 매일 간을 뜯어 먹히는 프로메테우스, 영원히 불바퀴에 달린 채로 공중제비를 해야 하는 이크시온, 밑 빠진 독에 끊임없이 물을 채워야하는 다나오스의 딸들, 저승의 산꼭대기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하는 시지프스, 측량할 길 없는 시간, 영원히 되풀이되는 그 잔인한 고통은 우리에게 던지는 3천년 전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이와 달리 지중해의 향제비꽃 향내를 그윽하게 풍기며 풍부한 서사를 펼치는 그리스 신화속의 수많은 연인들은 각자의 러브스토리로 삶의 복잡다난함과 생동감,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게 한 파리스와 헬레나,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 비극적인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슬픈 노래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제우스와 헤라, 오디세우스와 정절의 페넬로페, 에로스(큐피드)와 프시케 등등이 보여준 사랑과 미움, 유혹과 질투, 정절과 배신, 이별과 그리움의 서사는 오늘날까지 모든 유형의 사람들의 삶의 단면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3천년 전이나 지금의 21세기나 사람 사는 모습은 매양 똑같았다. 수천년간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들의 생을 거쳐 오는 동안 똑같은 신화의 모습이 재현되고 동일한 질문이 계속되어 왔다. 인간의 이성이 모든 만물의 이치를 규명했다고 하나 인간 각자의 실존은 아직까지 요원하기만 하다. 다시 굴러 내릴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바위를 언덕 위로 끌어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밑바닥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독에 물을 붓는 다나오스의 딸들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부조리와 비합리와 우연성의 운명을 결연하게 거스르고자 한다.

신탁의 금기를 깬 이 세상의 모든 프시케는 에로스와의 사랑의 완성을 위해 모든 시험과 시련을 감내해 내고, 이 세상의 모든 에로스들은 지금도 고난 속을 배회하며 그의 프시케를 향해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나비의 영혼이 되는 에로스와 프시케, 그들의 아름다운 날개짓은 갖은 역경과 아픔을 통해 정화된 '기쁨'이라는 결실이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지프스의 몸짓이 지금의 문명이라는 무수한 길과 물줄기를 만들었으리라. 이 세상의 모든 에로스와 프시케들의 행보가 수백, 수천년간 아들의 아들, 그 아들들이 살아가는 미래의 문명을 만들고 역사가 될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아름답고 풍요로운 신화가 되어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후손들의 입에서 길이길이 회자될 터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