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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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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도 국수도 아니고 라멘이다. 점심시간 동안 아내의 일본라멘 식당에 매일 백 명이나 넘는 사람들이 먹고 가는 라멘이 신기하기만 했다.

 라면이 아니고 왜 라멘이라고 말하는지 짚고 가야겠다. 분말스프와 유탕 처리한 건면을 비닐 봉지에 포장한 한국의 패키지 인스턴트 라면과, 탱탱하게 반죽해 잡아 늘인 생면을 몇 시간씩 우려낸 각종 육수로 만들어 내는 일본 라멘은 다른 방식의 요리이니 구별해서 표기하는 게 맞다.

 한국에 부는 일본라멘 열풍,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라면, 세계 제1의 라면 생산국인 중국,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인 한국, 이 기이한 현상을 생각하다보니 라면에 대한 내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라면의 원조가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원조는 중국이다. 일본 개화기 때 일본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고베 등에 살면서 그들이 먹던 '탕면'이 일본인에게 퍼졌다. 닭고기와 돼지국물을 넣는 중국식에 일본의 가쓰오(가다랑어)나 멸치국물이 첨가돼 일본 라멘으로 발전했다.

 라면이 일본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63년이다. 공업용 우지라면이라고 정치적 무고로 박해를 받았던 삼양라면이 한국라면의 시작이었다. 내가 어릴 적 가장 맛나게 먹던 라면의 추억을 앗아간 그 장본인은 한 때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하다가 지금은 감방에서 라면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 사건만 생각해봐도 라면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음식이다.

 라면의 발전에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내가 왜 라면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음식이라고 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2차 대전 중에 전쟁 군량미로 밀의 대량생산을 주도했던 미국은 종전 후 과잉곡물 처리를 위해 유럽과 일본에 대대적으로 밀을 보냈다. 이는 단순한 인도적 원조가 아니었다. 공산주의 진영의 확대를 막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마셜 플랜'으로 불린 유럽 부흥을 위한 미국의 원조는 종국에는 유럽과 일본시장 진출이라는 숨은 목적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우리 세대가 초등학교 때 받아먹던 옥수수 빵과 탈지분유의 급식, 분식장려가 실상은 '미국의 밀 전략'으로 진행돼 온 것이다.

 전쟁, 종전, 부흥, 경제성장, 호황, 저성장, 불황으로 이어지는 전후 세대에 라면이라는 음식문화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의 국가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투영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라면 한 그릇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본을 여행할 때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라멘집이고, 원조격인 중국인들이 일본 전국의 유명 '원조 라멘집'을 둘러보는 투어가 인기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에 와서는 한국식 매운 라면을 먹기 위해 시내 곳곳을 누비는 광경을 보노라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중일 3국의 라면사랑을 놓고 보면, 라면이 국가 간 갈등을 넘어 서로의 문화를 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의 매개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라면과 라멘, 탕면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기 다른 맛을 찾아 가는 지금의 젊은이들의 여정이 그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젊은 날, 풀코스의 고급요리를 먹고, 2차, 3차 술자리를 마치고 집에 와서 허겁지겁 찾던 음식이 라면이었다. 라면이 없었다면 우리의 현대사와 청춘은 얼마나 쓸쓸했을 것인가.

 라면은 늘 그 자리에서 허기진 몸과 영혼을 달래 주던 우리의 국민 음식이었다. 싸고, 편리하고, 맛있지만 결코 가벼운 음식이 아니다. 라면 한 그릇이 우리 역사와 문화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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