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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11.20 14:25:43
  • 최종수정2013.11.20 14:25:43

장정환

수필가

"우리 직장인들은 많은 가식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요. 그 위선의 가면 때문에 좌절도 하고, 자기를 잃고, 길도 잃어버리고, 자신을 찾기 위해 고민하면서 다시 참자아를 회복하기도 하고요. 직장생활하면서 겪은 그런 경험들을 글로 써서 보내 주시면 안될까요· 특히, 마음의 근육을 키워 그것을 극복한 과정을 중심으로 해서요"

본사 홍보실에서 사보와 신문제작을 담당하는 작가의 전화를 받는 내내 왠지 모르게 즐거웠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맑게 웃는 모습이 그려졌다. 평소 작가분의 모습은 가면이나, 좌절, 가식이라거나 위선,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내 선입감 때문이었다.

사근사근하고 차분하게 그런 단어들을 내뱉는 그녀가 내가 보아온 작가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온유해 보이는 그 작가분도 연말의 사보 스페셜 테마로 기획할 만큼 직장생활의 무게에, 아니면 삶의 무거움에 고민하며 살고 있겠구나 하는 공감의식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뀌고도 남을 기나긴 세월동안 수많은 사업장과 부서로 옮겨 다니면서 헤아릴 수도 없는 동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혼자 웃음을 짓게 하는 풋풋한 추억들, 동료들과 며칠 몇 밤을 함께 지새우며 야근하던 일들, 퇴근 후에 소주한잔 놓고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며 호기를 부리던 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알력과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하고 불편해 했던 일, 부당한 억울함에 잠을 뒤채이던 밤들이 또 그 얼마이던가.

직장인의 일 년간의 행복과 불행은 새로 만난 상사와 동료가 결정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20년 이상을 거슬러 내 기억에 즐거움으로 새록새록 떠오르는 얼굴들이 얼마나 될까하고 헤아려 보았다. 존경스러워 그립고, 다시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은 얼굴들이 내게 얼마나 남아있을까·

돌이켜 보면 그리운 얼굴들은 그 공통점이 뚜렷했다.

내게 고유명사로 명료하게 각인된 그들은 삶 자체를 자기 것으로 충분히 살고 있는 분들이었고 자족할 줄 알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한 애정, 그것이 긍정의 에너지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주변 동료들을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몸에 밴 인간적 배려와 인격의 향기는 세상을 넓게 보는 풍요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세상을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었고 연민이었다.

불화의 시간을 제공한 이들 또한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즐기며 만족하는 자신만의 충만한 삶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사회질서나 계급의식에 양도한 듯 했고 하릴없이 무리지어 다녔다.

자기 삶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규율과 제도에 의해서만 살았고, 이미 세상이 조율한 목소리만 읊조렸다. 자신의 틀만 지키려 남들을 부정하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 틀은 그들 스스로의 족쇄였고 남들에겐 벽이었다.

자신의 결핍이 남들을 황폐하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한 형은 수시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찾아 올랐다.

또 한 동기는 지난 뜨거운 여름, 자전거 하나로 4대강을 종주했다. 아끼는 후배는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한 줄의 문장을 건지기 위해 시를 쓰고, 또 썼다.

스스로 만끽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은 자기를 극복하려는 고통과 비례하는 게 확실했다. 내가 아는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고, 건강한 본성으로 남들까지 풍요롭게 해주었다.

정의는 내가 아닌 남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마르크스도 말했듯이 정의는 다만 속박하지 않는 자유로 남을 충만하게 만드는 거였다.

자신의 삶의 파동이 주변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가른다는 자각이 날 벌떡 일으켜 세우고야 말았다.

남들의 인생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내 허술한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단련시켜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고,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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