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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10년도 전에 '미(美),가장 예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는 고약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낸시 애트코프'가 쓴 이 책을 완독한 후 난 잠시 착잡해졌었다.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선호는 유전자에 새겨있는 뿌리 깊은 원초적 본능이며, 그것이 종족보존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여 인류의 생존을 이끌어왔다는 것이 요지였다.

즉, 아름다움과 매력에 대한 핵심은 건강한 다산성(多産性)으로 인류 진화과정에서 이 특성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도 이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그것 때문에 젊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한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것이 가장 지고한 삶의 목표였던 내겐 다소 실망스러운 결론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제는 교환가치나 지배수단으로 전락한 인공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당연하게 용인되는 세상이 아니던가.

며칠 전 우리고장에서 열린 '오송 화장품 뷰티박람회'를 다녀왔다. 박람회 모든 관람관 입구마다 사람들의 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의식을 치르듯 간밤의 때와 땀을 말끔히 씻어내고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형형색색 옷들로 아름답게 치장한 관람객의 모습은 그 자체가 미의 박람장이었다.

관람장에서 처음 마주친 나르시스의 프로젝트 영상, 나르시스는 하염없이 연못만 쳐다보고 있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파문이 되어 사라졌다가 또 다시 나타났다.

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도취되어 결국 한 송이 수선화가 되어버린 나르시스, 자기애에 빠져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던 나르시스의 운명이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안타까웠다.

같은 곳에 전시된 석기시대 '빌렌도르프 비너스' 조각상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 앞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지나치게 과장된 가슴과 배, 커다란 엉덩이는 기원전 3만 년 전,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인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었다.

보티첼리가 그린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는 바다 거품에서 방금 태어난 것처럼 진주조개위에 신비롭게 서 있었다. 꿈길을 헤매는 듯 나른한 표정, 긴 금발로 나체를 감추려는 은근한 모습이 더욱 몽환적이고 관능적으로 보였다.

이 두 비너스 사이의 수만 년 세월동안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비약이 이어져왔는지 가늠되었다.

여기까지 거치다보니 박람회의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린 듯 갑자기 심드렁해졌다. 나에게 나머지 부분은 부연설명으로만 여겨졌다.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흐드러지게 핀 양비귀 꽃잎들의 붉은 물결, 숨 막히도록 화려한 그것 또한 만개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람에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아, 어쩌자고 이렇듯 아름다운가! 난 비로소 깨달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비너스가 왜 달콤하고 부드럽고 탐욕스런 파도거품에서 탄생했던가를,

거품은 언젠가 마치 제피로스의 서풍에 날리듯, 어둠에 잠기는 광채처럼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 다른 반짝이는 거품이 아침 첫 햇살에 나타날 터였다.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영원할 수 없듯이, 아름다움은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elan vital)'처럼 생성과 도약하려는 욕망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거였다.

그것이 생명의 본성인 것 같았다. 나무들, 꽃잎들, 사람들 모두 아름다움을 향해 솟아오르는 욕망 속에서만 빛나게 현존하는 생명들이었다.

그러나 나르시스처럼 자기만을 향한 고립된 시선으로는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음을, 내가 꽃을 바라볼 때 꽃도 나를 바라보듯이 서로 사랑스럽게 교차하는 시선에서만 아름다움이 태어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아름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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