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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기나긴 겨울을 예고하듯 차가운 바람이 긴 꼬리를 물고 불어왔다. 아직은 만추의 거리였으나 추위에 익숙지 않은 몸이 따뜻한 한 줌의 햇볕이라도 갈망하고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한 달 전부터 작가의 책 중 일곱 권을 다시 골라 읽었다. '은교'나 '소금', '비즈니스'는 만남 하루 전에야 겨우 읽기를 마쳤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고 있으나 박범신 선생님도 이제 낼모레면 고희의 나이가 되었다. 그 정도의 연륜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라는 기대가 있었다. 직접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책을 보면 언제나 인간의 본능과 신성을 대극에 두고 그걸 메꾸려는 갈망을 표현해 왔는데요, 선생님이 수시로 말한 '존재에 대한 근원적 갈망', 그 갈망들이 나이가 들면서, 아니면 글을 쓰면서 좀 해소되지 않던가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 내가 막걸리 마시며 웃고 있지만, 그 갈망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집디다. 밤이나, 혼자 있게 되면 갈망 때문에 그 예민한 시간들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은교'나 '고산자'는 그런 의미에서 쓴 상징적인 책이지요."

어둠이 내린 논산을 떠나오면서 갈증이 일어 마른 목을 삼켜야 했다.

고희가 되어가면서도 갈망이 점점 커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 근원적 갈망은 언제쯤 충족된다는 말일까·

논산에 다녀 온 지도 두 달이 지났고, '갈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파스칼 키냐르와 스피노자의 책들을 읽으며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인간은 이미지 하나가 결여된 존재다"라는 키냐르의 글귀가 번쩍하고 눈앞에 다가왔다.

그 결여된 하나의 이미지는 자신을 만들어낸 행위, 즉 자신이 수태되던 장면이었다. 자신이 부재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삶의 시작은, 부재했으므로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원초적인 공백이었다.

키냐르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한 조각이 모자라는 퍼즐을 찾기 위해,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가야 하는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여된 하나의 이미지가 결코 채우지 못할 인간의 갈망과 결락감을 가져다주었으리라.

모천을 향해 강을 거슬러가는 연어처럼, 자신의 미지의 근원과 비밀스런 기원을 끝없이 탐색해야하는 숙명을 남겨주었으리라.

그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 일이 누군가에게, 아니면 그 무엇에 매혹되는 일이며, 사랑에 빠지는 일이며, 애욕에 탐닉하는 일이며, 창조하거나, 그림도 되고, 영화도 되고, 예술과 문명이 되는 일이었다.

며칠 전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박범신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좋은 옷을 입고 싶다, 고급차를 타고 싶다, 넓은 집에 살고 싶다, 하는 것은 욕망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고, 영원히 살고 싶다, 죽기 전에 사랑의 완성을 보고 싶다, 불변의 행복감을 맛보고 싶다, 하는 것은 갈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건 살아생전 거의 이룰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사람이 품위 있게 살려면 갈망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해요. 내면에 욕망만 가득하다면 제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라 해도 천박한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꿈이 많다는 건 어쩌면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해요."

이룰 수 없는 꿈인 줄 알면서도 다가가려는 몸짓들이 인간의 안타깝고 숙명적인 갈망일 터였다.

난 나로 인해 그 누군가 불완전해진다면 슬플 것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빈 조각을 채워서 완전해지고, 기뻐하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퍼즐 찾기는 멈출 수가 없다.

비어있는 한 조각 퍼즐 찾기는 누군가와 함께, 또는 그 무엇에 의해 너와 내가 완전해지는 기쁨의 에티카(ethica)가 되기를 꿈꾸는 것이리라.

"모든 해석은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키냐르의 낙담을 또 다시 듣는다 하더라도, 아니면 또 하나의 낯선 갈망의 시작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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