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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 충북본부 홍보실장

시큼했다. 산길 옆 나뭇가지에 저 홀로 매달려 있는 야생사과를 한입 베어 물곤 했다. 떫으면서도 달콤했던 길들여지지 않은 야릇한 그 맛. 이름 모를 새들이 쪼아 먹던 어설펐던 그 사과들은 어릴 적 산길을 지나칠 때마다 음미하던 나만의 숨겨진 보물들이었다. 과일가게에서 사온 둥글고 빛이 나는 잘 익은 사과를 먹을 때마다 언제나 그 야생의 사과가 목마르게 그리웠다. 새해에 들면서 부쩍 그 야생사과의 시고 떫은맛이 떠올라 기갈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갑갑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똑같은 격자무늬의 수십 개의 방들이 25층 높이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눈앞을 가로막는다. 이 거대한 콘크리트 건조물은 사글세 단칸방에서 두 칸 방으로, 전세방에서 연립주택으로, 작은 평수 아파트에서 큰 아파트로 입성하기까지의 고단한 흔적의 무게감으로 인해 견고한 성처럼 느껴진다. 지나간 삶의 여정이 이 건물을 향한 경배의 시간이었고, 이제 주거지는 자본을 숭배하는 사원이 되어갔다. 여기까지 서둘러 오느라 인생을 너무 빨리 지나쳤다. 온 삶을 은행계좌에 저당 잡혀 잔고를 채우느라 숨고르기도 제대로 못했고, 계절 따라 대지를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흙냄새 나는 땅에 나무 한 그루 심지를 못했다. 딱딱한 벽들로 둘러싸인 공간 입구마다 가장과 아들과 딸들은 캄캄한 새벽에 등이 떠밀려 나가서 어두워진 밤중에 들어오고 나갔다. 일상은 크나큰 중력만 같았다. 집 잃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제와 똑같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뒤지다 어슬렁거리며 슬로우 모션처럼 건물 뒤편으로 꼬리를 감춘다.

불현듯, 사라진 길고양이의 걸음과 닮은 이 도시에서의 밥벌이를 생각한다. 대책 없이 발설되던 옹졸하고 인색한 농담들, 깊은 내면까지 침윤되어가던 메마르고 편협한 거래들을 떠올린다. 이 콘크리트 더미에 쌓여 난 그동안 얼마나 왜소해졌던가. 얼마나 의젓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했던가. 뺏고 빼앗기는 생존의 강령들만 난무하는 이 도시에서, 난 삶의 전망이 막혀버린 것처럼 허허로워서 외로워졌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 하지만 머지않아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다가올 것이고 연분홍 사과꽃잎들이 향기 나는 온기를 품은 채 봄바람에 하늘거릴 것이다. 이제 마음을 다져야겠다. 들판마다 흐드러진 꽃잎들이 분분하게 날리고 파란 무청의 새싹이 다소곳이 돋아나올 때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다. 그동안 생각만하며 미루어 왔던 일, 안락이라고 여겨왔던 습관, 익숙하게 길들여진 관습의 맹목을 전복하는 일. 그 시작은 자그마한 시골에, 햇볕 따사한 뒷산이 품고 있는 한 뙤기의 땅을 갈고 엎어서 내손으로 소박한 나의 집을 짓는 일이다. 내가 삽질한 그 땅에 밤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배롱나무, 능소화를 심고 새벽마다 이슬 머금은 대지를 밟으며 나 자신을 찾아갈 것이다. 그 아담한 나의 집을 위해 나 스스로의 근육으로 물꼬를 내며 땀을 흘리리라.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의 삶처럼 나의 노년도 밥을 벌기위한 노동은 하루 반나절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해 쓸 것이다. 한 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흙을 밟기 위해 산책만 할 것이다. 방문객이 찾아와도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 얘기와 웃음을 나눌 것이며, 먹고 남은 채소나 과일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것이다. 하루에 한번은 철학, 삶과 죽음, 명상에 대해 사색할 것이며 내가 지은 노래를 맘껏 부르리라.

나이가 들면서 움켜진 것을 내려놓는 것이 자연의 시원과 닮아간다는 걸 알겠다. 야생사과의 떫은맛을 음미하는 여유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순연하게 긍정하는 것임을. 이제 의연하고 당당한 발성을 익힐 때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노래 부르듯이. 안단테 칸타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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