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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자신이 기르는 암캐가 백주대낮에 이웃집 수캐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개 주인을 고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며칠 전 미국에서다.

하운드 종 한 살짜리 이 수캐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이웃집 암캐를 보자마자 그만 욕정이 발동해서 일을 저질렀다. 암캐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결국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개 주인에게 수캐를 단속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범칙금 티켓을 발부했다. "수캐가 이웃집 암캐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시켰다"는 내용인데, 개 주인도 "우리 개가 암캐를 임신시킨 증거가 있냐."며 법원에서 시비를 가리겠다며 벼르고 있다고 한다.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법원의 판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지난 크리스마스 때에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눈보라 속에서 실종된 눈먼 개 한 마리가 영하 40도의 강추위를 뚫고 16km를 헤맨 후, 실명한 눈으로 열흘 만에 집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 방송국 '세상에 이런 일이'프로그램에서 일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진돗개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 진도에 사는 개 주인이 서울로 가서 이 진돗개를 팔았는데, 옛 주인을 찾아 서울에서 진도까지 그 머나먼 길을 달려왔다는 것이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렇게 개 이야기가 내 귀에 쏙쏙 박히는 이유는 지난 십년동안 함께 살아온 우리 집 '해피' 때문이다. 체중이 2kg도 안 나가는 미니핀 종인 해피는 사람으로 말하면 이제 거의 환갑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해피가 태어난 지 채 몇 달 안지나 처음 만났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윤기 반지르르한 금빛 털, 날렵한 몸매로 쏜살같이 달리던 우아한 발걸음,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두리번거리던 모습하며, 앙칼스럽게 짖어대던 단단한 목소리, 엉덩이를 실룩대며 걸어 다닐 때면 얼마나 요염하며 앙증맞던가. 그때 난 그놈에게 홀딱 반했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에 퇴근시간만 기다려졌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내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해피는 현관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문에 집중한 채 하염없이 날 기다렸다. 가끔 야근이나 회식으로 늦어질 때면 거의 밤 10시 정도 되어서야 고개를 떨어뜨린 채 철수한다고 하니, 그놈을 슬프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부대끼며 함께 살아온 해피가 이젠 늙었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관심의 대상이었고, 산책하며 스쳐가는 꽃과 나비들이 호기심이고, 낯선 길로 접어들 때면 두려움과 설렘으로 흥분하며 색색거리던 해피가 이젠 달라졌다. 한마디로 초연해졌다. 세상일 별거 아니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바뀌었다. 통통거리며 신나서 날뛰던 걸음이 느릿해졌고, 날카로운 이빨을 앙다문 채 으르렁거리며 위세를 과시하던 호기가 엷어졌다. 낯선 사람을 권위 있게 노려보던 눈빛이 부드럽게 깊어졌다. 나날이 기력이 쇠하는 해피를 바라보며 난 착잡해졌다.

내가 지난 십년간 바라본 해피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책'이니 '후회'같은 자기연민의 어떠한 부정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을 전적으로 긍정하며 즐겼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을 대했다. 남을 욕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이전투구(泥田鬪狗)라는 말은 얼마나 해피를 모욕하는 말인가. 기쁘면 기뻐했고 슬프면 그냥 슬퍼했다. 인간의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개로 진화해온 조상늑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 미래 때문에 지금을 고민하지도 않았다. 해피는 단지 현재만 살아왔다.

아직 연애한번 못해보고 늙어가는 해피를 쳐다보다가 조만간 판결을 기다리는 '하운드 개'의 운명이 궁금해지고 조바심이 났다. 진짜로 이 수캐와 암캐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인간들의 알량한 잣대로 이놈들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거나 아닌지 슬며시 걱정되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어지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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