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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수필가

퇴근직전 한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의 이른 봄날, 선배님으로부터 직무교육을 받았던 'J'입니다. 저는 2005년 봄에 본사로 올라온 후 현재 UAE원전사업처에 있습니다.

청주에서 신입사원으로 처음 근무한지 열 번의 봄이 지났지만, 해마다 봄이 되면 무심천 강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벚꽃과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업무를 마친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독서를 하시던 선배님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정확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였지요.

얼마 전에는 사보에서 선배님이 쓰신 글을 우연히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글쓰기를 사랑하고 글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던 선배님의 맑고 고고한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때의 후배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차분한 몸짓으로 조용히 미소짓던 얼굴이 스쳐갔다. 사보에서 독서감상문 수상소식을 듣고, 가끔 중앙지 기고문에서 이름을 확인하기도 하던 친구였다.

10년 세월이 지나 지면에서 한줄의 글을 보고 연락을 해온 후배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워졌다.

요즘들어 거의 책도 읽지않고 제대로된 글을 쓰려고 하지않았던 것이다. 책읽기도 심드렁해졌고 글을 쓰는 일이 너무도 시시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게 고고한 성품 운운하며 호의를 보여준 후배에게 할말이 없어졌다.

이 한통의 메일이 다시금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내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게 글을 쓰게된 최초의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내준 독후감때문이었다. 개학전날 한꺼번에 한달치 일기를 쓰고난 후 마지막으로 독후감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마땅히 쓸거리가 없던 나로서는 난감했고, 방학기간 틈틈이 만화가게에 들러 읽었던 만화책이 생각났다. 지금 작가와 제목은 잊었지만 그 장면 하나하나와 내용이 여지껏 생각날 정도로 감명깊게 읽었던 만화였다.

길잃은 늑대 한 마리가 깊은 계곡을 헤매며 겪는 고독한 생존과정의 얘기였다. 난 그 감동을 독후감에 담아냈고 겨우 숙제를 끝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수 과제물로 선정되어 조회시간에 내가 호명되었던 것이다. 교장선생님에게 받아든 상장과 상품, 높은 단상위에서 내려다 본 3천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눈망울, 숨이 턱 막혔고 다리가 후덜거렸다.

'내 독후감이 만화책이라는 게 들통나면 어쩌지'라는 걱정으로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걸핏하면 학교대항 백일장에 불려다녔고, 삼국사기등을 읽는 고전읽기동아리에 끌려다니기도 했다.

그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모든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나 진실해야하고, 자신에게조차 정직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진실하고 정직한 글쓰기가 나의 철칙이 되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내게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일은 인생을 잘 살려고하는 것과 같았다.

언어를 세공하는 것은 자기의 삶을 다듬는 일이고, 자기의 스타일은 자신만의 삶의 관점이며 삶을 대하는 방식일 터였다.

혼돈과 미망의 삶에서 조화로움과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절박함, 남루하고 상투적인 삶을 전복하여 지금의 이 시공간을 새롭게 창조해야한다는 거창한 욕망으로 시작한 글쓰기였다.

하지만 지금에는 그저 글쓰기가 좀더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려는 단순한 소망에 불과함을 알았다.

"저도 선배님을 본받아 사유의 힘으로 탄탄한 언어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후배의 열정어린 말이 내게 글쓰기가 시시한 일이 아님을, 하여 삶도 결코 시시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일깨우고 용기를 주었다.

또 다른 10년이 흐른 후에도 훌륭한 작가로, 더불어 좋은 인생을 살아갈 후배 'J'를 위해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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