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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2.22 18:02:0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책장을 정리하다가 두툼한 파일북을 발견했다. '세웅이네 가족신문'. 오랜 동안 잊고 있었던 16년 전 가족신문이었다. 큰아들 초등학교 5학년, 작은놈 유치원 때였고, 주말부부로 생활하던 시절이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시작한 신문이었다.

'이 번에 가족신문을 만들게 되어서 참 좋았다. 편집장으로서 꿋꿋하게 만들어 나가겠다. 편집장 장세웅'이라는 발간문을 시작으로, '95년은 우리 힘으로 처음 내 집 장만을 한 보람 있고 행복한 한 해였다'라는 아내의 소감, '피아노를 배워서 재미있었다. 형아가 날 개구쟁이래, 그런데 형아가 진짜 개구쟁이래요, 아빠 생일선물로 담배 하나 샀어요'라는 삐뚤삐뚤한 막내의 글씨를 보자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세완아 안녕? 자전거 많이 탔어? 재미있게 타더라도 어둡기 전에는 집에 돌아와야겠지?, 늦게 들어오면 엄마가 걱정한단다. 토요일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라는 편지도 스크랩되어 있었다. 같이 여행 다녔던 사진이며 온갖 생일카드, 연하장, 편지 등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자리에 털썩 앉아 그 간의 편지들을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아들 세웅아,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단다. 그 장미는 춥고 어두운 자정부터 두 시까지 따는데 그 때의 장미가 최고로 향기로운 향을 내 뿜기 때문이란다. 청춘이란 인생에서 아름답게 핀 꽃이다. 베개에 눈물을 적셔본 자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고 영혼의 향기는 고난 중에 발산된다는 걸 명심하거라'. 이 편지는 큰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보낸 것이다. 이때부터의 편지는 단문이 아닌 중문으로 길어지고 사뭇 진지해 지는 것 같다.

큰 아들이 진주 공군 훈련소에 입대한 후 입고 간 옷이 흙투성이가 되어 소포로 돌아왔었다. 그 옷 틈에서 찢어진 라면 박스에 꼼꼼하게 써 내려간 큰 아들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편지지도 없이 급하게 적어간 사연은 내가 받은 것 중에서 가장 감명 깊고 가슴 뭉클한 편지였다. 그 답장으로 보낸 편지. '세웅아! 네가 입대할 때, 아파트 베란다에 넝쿨을 올리던 나팔꽃과 수세미가 천장에 닿도록 키가 자랐다. 어제 노끈을 다시 이어 주었단다. 나팔꽃 넝쿨이 커가는 만큼 네 훈련기간도 나날이 더해가는 거겠지. 아빠가 올봄에 씨를 뿌려 발아시킨 꽃 화분들을 매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한다. 이 세상에 하찮은 생명이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 들 가에 핀 잡풀 하나라도 다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자체로 귀중한 개체인 것을, 잘 익은 과일이 달고 향기가 나듯 잘 단련된 인간은 스스로 기품이 있고 멋스러움이 우러난단다. 뜨거운 불이 쇠를 단단하게 한다. 네 군대 생활이 널 더욱 더 견고하고 강인하게 만들 것이다. 답장 쓰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복무에 충실해라. 항상 널 그리워하고 있다'. 그 때 이틀에 한통씩 편지를 보냈었다. '세웅아, 이번 주도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구나. 네게는 시간이 달팽이 걸음처럼 무던히도 길게 느껴지겠지? 오늘 책을 읽다가 의미 있는 구절이 있어서 말해줄게 "한 인간의 몸속에는 무수한 생명들의 생멸이 깃들어 있다". 네 몸 하나에 아빠 엄마 뿐 아니라 수백 수천의 네 선조들의 생명들을 통해온 숨결과 기나긴 역사가 묻어 있다는 얘기겠지. 그래서 네 몸을 소중하고 건강하게 지켜내야 하는 절대이유가 된다. 부디 몸조심해라'. 가족신문에 끼워 있던 어느 날의 쪽지하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태어나 세대에서 세대를 거쳐 이어주는 유전의 지층. 그 사이의 빛나는 시간을 같이하는 사람들, 내 가족들'. 하지만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들고 지금도 좋아하는 편지는 막내가 일곱 살 때 빨간 하트그림과 함께 꼬물꼬물하게 쓴 이 글이다. "아빠 사랑해요. 그런데 엄마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일 잘해요? 언제 같이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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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