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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 충북지역본부·수필가

"이제 빨대를 빼버리는 소감이 어때?" 나를 쳐다보는 막내아들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냈다.

대학졸업반인 막내의 첫 출근길에 내가 짓궂게 불쑥 물었던 것이다.

"속 시원하지요, 아버지" 넉살 좋게 되받아치는 아들 녀석과 마주 보며 껄껄 웃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니 내가 발 디뎌야 할 세상은 길고 어두운 터널처럼 막막했었다.

먹고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며, 자존감을 지키며 고상하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알량한 욕심이었던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뚜벅뚜벅 살다 보면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느 작가의 말대로 자본주의는 '빨대'와 '깔때기'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분명했다. 내가 걸어가는 길은 서로 물고 물리는 탐욕의 세상,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가 지뢰밭처럼 앞길에 깔렸었다.

언제부턴가 자식들이 조금씩 커가는 걸 지켜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보다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장래의 세상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사회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내 아이들을 위한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가슴 아프게 여기는 건 큰아들의 진로를 부모의 강요에 따라 바꾼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벌써 컴퓨터를 조립할 줄 알던 큰 아들은 컴퓨터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프로그래밍 능력이 특출했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생 때까지 아마 그쪽으로만 꿈을 키우고 있었으리라. 어느 날 몰래 훔쳐본 일기장엔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영화처럼 살 것이다"라는 다소 낭만적인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 큰아들을 취업률이 가장 높은 학과로 결정하여 대학을 보냈다. 꿈보다는 생계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막내의 대학 4학년 2학기 등록금을 은행에 내고 난 뒤 아내와 난 이상하고 묘한 기분 때문에 잠시 의아하고 어리둥절해했었다. 그건 해방감이었다. '내가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는 다했구나'라는 홀가분함이었다.

그렇게 두 아들을 교육시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내보내는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와 아내는 눈도 침침해졌고, 탄력 없이 늘어진 주름살과 기력 빠진 팔다리로 예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한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당당한 사회인으로 만들어내는데 최소한 25년에서 3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은 엄정한 사실이었고, 내 한평생의 삶을 자식들의 교육과 부양을 위해 맞바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아직 어두컴컴한 아침에 출근하는 막내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맛보았던 홀가분한 해방감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나를 대신한 새로운 한 세대의 고단하고 지난한 삶의 행보가 눈에 잡히듯 선했기 때문이다.

내 부모가 나를 위해 그래 왔듯, 내가 그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내 아들이 나를 대신해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날 숙연하게 만들었다.

풍요로운 소비의 문명을 누리며 자라온 아들 세대이지만 난 그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행복한 세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겼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소득의 양극화와 불평등, 고용의 불안이 팽배한 이 고장 난 자본주의가 두렵기 때문이었다.

내 아들과 딸들을 사랑한다면 이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들이 낙오자의 불안을 걷어버리고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 그것은 정치하는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들이 책임지고 완성해야 할 이 시대의 과제일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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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