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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꽁꽁 언 씀바귀 한 바구니를 3천원에 산다. 고개를 돌려 보니 대파도 바싹 얼어 볼품없이 망가졌다. 그것도 5천원에 산다. 시장골목 안쪽에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채소들이 다 얼었다.

시장 입구엔 늙은 어미와 젊은 아들이 티격태격한다. 딱딱하게 얼어버린 오징어와 물미역을 이리저리 옮기기만 하는 어미에게 아들은 이유 없는 핀잔으로 다그친다. 아내와 나는 벽돌처럼 굳어버린 오징어 몇 마리와 물미역도 산다.

지난 계절에 흥청이던 시장이 오늘은 파장 분위기다. 칼바람만 빠른 속도로 통행하는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5일장에 온 것을 후회하던 참이다. 어쩌자고 이런 날에 시장 나들이를 했을까.

손님이 뜸하니 시장 골목마다 한 움큼의 땅콩, 서리태, 콩나물이며, 청국장을 팔기 위해 쪼그려 앉아있는 할머니들만 보인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한 영국 여왕과 비슷한 나이대의 할머니들이다. 이 거리를 거닐며 우아하게 미소 짓던 외국의 여왕이 왜 갑자기 떠오르는 걸까. 아내는 또 다시 콩나물과 청국장을 한 봉지씩 담아 시장바구니에 쑤셔 넣고 있다.

해 뜨기 직전, 대문 앞 앙상한 느티나무 가지가 어둑하게 보일 때쯤에 집을 나섰을 할머니들, 벌써 반나절을 떨고 있는 할머니들을 그냥 스쳐가질 못한다. 할머니들의 웅크려 있는 초라한 자본을 왕창 소비하여 소진하고 싶다. 그리하여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곳으로 이 할머니들을 빨리 보내고 싶지만 나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나 또한 얄팍한 지갑만 가진 한낱 소시민인 것을.

장갑하나 없이 천원어치 콩나물을 맨손으로 담는 할머니의 느릿한 몸짓이 소신공양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몸뚱이로만 생계를 꾸려야하는 이 차가운 삶을 거룩한 소신공양으로 표현 못하면 난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난 복부비만을 염려하는 내 중년의 안온한 일상을 되돌아보고 이젠 추워도 춥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 추위 속을 온기하나 없이 견뎌낼 자신이 없는 나는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공주의 공산성 5일장을 다녀오곤 난 추위를 잊었다. 잊었다기보다는 감히 추위를 말하질 못했다.

할머니의 얼어버린 콩나물과 씀바귀는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없는 자본이었다. 몇 천원의 지폐를 주고 산 그것들은 상품이 아니라 할머니의 생존이었다. 난 할머니의 생존품목을 받아온 것이다.

누가 시장이 풍성하고 정감 있는 장소라 했는가, 겨울 시장은 절해고도의 한 생을 묵묵히 버티는 늙은 사람들의 추위와, 절박함과, 외로움만 있었다.

노점의 할머니들은 이 위태로운 겨울날을 세 끼니 밥과 바꾸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불한 푼돈으로는 할머니들의 바닥난 잔고를 채울 수 없을 것이며, 폭신한 이불과 따스한 아랫목이 있는 집으로 할머니의 발걸음을 되돌리지 못할 것이다.

시장에서 사온 물미역을 무치고 청국장을 끓여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는 얼어있던 씀바귀를 데쳐서 초고추장과 참기름에 버무렸다.

씀바귀의 쓴 맛이 입안에 쏴하고 퍼지며 쓰디쓴 뿌리가 내 식도로 삼켜질 때, 인생 정수(精髓)의 맛, 생존의 참맛이 이런 맛일 듯 했다.

지금껏 배터지게 먹고 남긴 산해진미의 음식들은 내가 무심코 먹어온 허위의 욕망이며, 화려한 조명아래서 사들이고 버렸던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무수한 상품들은 가식의 환상인 것만 같았다.

욕망과 환상만 소비했을 지나간 내 삶이 부끄러웠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이 소박한 음식을 난 꼭꼭 씹어서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이 소신공양의 음식을 허투루 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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