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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KEPCO)

수필가

여기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공중마다 거대한 타워크레인, 육중한 소음의 불도저, 줄을 잇는 대형 트럭들의 행렬,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중장비들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세종시의 아침은 공사를 시작하는 수많은 인부들이 깨웠다.

지난여름, 수십 년을 살아온 청주에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하루하루가 심란하면서도 설레었다. 아직 이십여 년을 이러한 소음과 분주한 공사현장을 마주쳐야 한다는 걱정과 새로운 역사를 쓰는 도시를 누구보다 먼저 함께한다는 기대감이 수시로 교차했다.

금강변의 부드러운 물안개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아침, 무진기행을 떠올리며 삽상한 기분으로 미호천을 가로지르는 출근길, 휴일이면 자전거로 달리며 몇 시간씩 따사로운 햇볕을 쬘 수 있는 여유로움은 그동안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우쳐 주었다. 문 밖만 나서면 질주하는 차량들에 주눅 들지 않고 하루 종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강변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고 했다, '장소가 실존의 의미를 규정한다.'라는 거창한 생각을 그만두더라도 내가 숨 쉬고 있는 지금의 이 새로운 도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폭설로 온 대지가 흰 눈으로 뒤덮인 지난 휴일 날의 세종시 아파트 단지는 순식간에 눈썰매장으로 변했다. 젊은 아빠 엄마와 함께 나온 어린이들의 손에 한 두 개씩 들려 있는 눈썰매들을 보고 잠시 데쟈뷰를 느꼈다. 그 기시감은 지난여름과 가을에 똑 같은 모습을 한 자전거 행렬과 산책하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함께 집 밖으로 나왔다. 도시의 거리들을 횡단하여 먼 곳으로 이동하여 즐기지 않았고, 단지 집밖이었다. 앞마당과 골목길과 이웃집을 오가는 거리에 가족 모두 모인 것이다. 사소한 일이지만 내가 새롭게 정주한 이 도시의 큰 가능성을 엿본 순간이었다.

거리는 본래 열린 공간이다. 지금껏 도시의 거리는 닫힌 건물과 집과 방처럼 닫혀있었다. 내가 여태껏 살아온 거주지의 거리는 단순히 통과하는 통로였다. 빠져 나오고 되돌아가기 위한 터널이고 블라인드가 내려진 집과 다름없었다. 토마스 머튼은 도시의 품질은 사람들이 거리와 건물과 방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채우고 있는가'의 차이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던가? 관계가 단절된 공간, 사람이 함께 부대끼지 않는 공간은 다만 익명의 삶이 방관하는 허구의 공간일 뿐이다. 주민등록상만으로 존재하는 비인간(非人間)의 공간에 불과하다.

이제 도시의 거리는 사람들이 삶을 향유하는 공간, 일상을 소소한 축제로 만드는 곳, 가족과 이웃이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이 새롭게 건설되는 도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였다.

새해를 시작하는 시간, 이 도시로 운집한 수많은 낯선 이주민들이 새 세종정부종합청사 옆의 호수공원에 모였다. 그들 모두 화려한 불꽃놀이에 환호하며 각자의 염원을 기도했다. 그들은 이 낯설고 풋내 나는 도시에서 무엇을 기구했던 것일까?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도시, 또 하나의 도시가 지금 이곳에 건설되고 있다. 경쟁력을 위해 모든 기능이 집중된 서울은 '성장'이 아이콘이었다. 지금도 공사 중인 세종시의 핵심은 삶의 질을 위한 '균형'이다. 두 상징어의 대척점 끝에 이 도시의 미래가 있다. 이 새 도시는 시대의 소망을 담아 만들어지고 시대가 요구하는 욕망에 따라 사람들로 붐비게 될 것이다.

난 이 도시가 승리하길 바란다. 모든 도시의 공간이 활짝 열리기를 소망한다. 이 도시의 거리들이 가족과 이웃, 사람들의 웃음과 즐거운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이 도시가 축제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명의 상상력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이가 가능성을 꿈꾸는 행복한 도시가 되기를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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