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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한전충북본부 홍보실장

로미오가 줄리엣을 향해 사다리를 타고 오른 것은 그의 남성 생식세포 때문이었다. 자신을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여성 생식세포를 만나러 가는 길을 혹자는 사랑의 아름다움이라고 예찬한다. 우주가 생겨 난지 150억년 동안 정상적으로 생겨먹은 모든 생명체는 그저 하나의 생식기일 뿐이다. '야수의 허기'를 쓴 '르네 바르자벨'은 남녀 간의 사랑은 실은 종족보존을 위해 본능의 조종을 받는 호르몬의 꼭두각시 행위라고 단언한다. 무수한 꽃가루가 날릴 때 사랑의 행위가 시작되고 꽃가루가 암술을 만나 수정을 하고 생명을 이어간다. 하여 인간의 생식이 민들레와 엉겅퀴 꽃과 무엇이 다르며 인간의 허기가 늑대와 사자의 배고픔과 무엇이 다르단 말일까? 모두가 생명의 종을 이어주는 운반도구인 것을.

각자의 인간 삶을 들여다보면 이성 파트너의 선택은 탄생 다음으로 가장 비의지적인 행위이다. 남녀가 쌍을 맺는다는 것은 무수한 사회적 우연 속에서 유전적 요소를 전달하여 종을 보존하려는 본능적 충동일 뿐이다. 이것을 가리켜 결혼이나, 애정이니, 질투니, 간음이니, 매춘이니, 가족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일컬어 사랑이라고도 한다. 바르자벨의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모든 곳에 사랑타령이다. TV광고, 드라마, 영화, 책, 가요, 친구들과의 모임, 여자들의 수다, 점잖은 강연시간에도 넘쳐나는 것이 사랑이다. 모두가 허기져 있고 목말라하고 있다. 왜? 외롭기 때문이다.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외로워, 외로워"라는 동의어의 다른 표현이다. "내 곁에 그대가 있어도 난 네가 그립다"라는 말은 "너와 함께 있어도 난 외롭다"라는 말이다. 우리 각자는 함정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 붙잡혀 있는 대중일 뿐이다. 대중들은 어울려 다니나 각자가 익명이며, 프로그램화된 부품이며 고만고만한 교환가치이다. 가정과 직장과 학교는 환승터미널이며 대합실이다. 각자의 생애는 표준 분류되어 똑같은 생각, 동일한 음식, 비슷비슷한 여가, 누구나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랑을 가진다.

모두들 '나는 살아 있다'고 외치고 싶다. 이 세상이 내게 만큼은 미칠 듯이 아름답고 꿈꾸듯 황홀하고 뜨겁다고 느끼고 싶다. 살아 있음의 희열을 놀라워하며 만끽하고 싶다.

이렇듯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근원적으로 불화가 내포되어 있어 사랑의 메타포는 어렵고 버겁다. 무거우면서 참을 수 없이 가볍다. 무한과 지고를 꿈꾸는 영혼은 제한적이고 유한한 육체 속에 감금된 채 다만 자신의 생식 임무만 다한 후 사라지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기술인가?'라고 물었다. 프롬은 사랑이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랑의 핵심을 자신의 사랑하는 능력에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가로 여기는 게 문제다. 여기서부터 오류와 과오가 시작된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가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는 상태여야 한다.'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면서 상대를 성장시키는 것, 사랑으로 행복해지려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심동체는 틀렸다. 한 쌍이 한 마음으로 지속되는 시간이 얼마나 되던가? 로봇이 아닌 이상 합체가 가능하던가? 상대를 나의 생각과 똑같이 만들려는 시도는 상대 생에 대한 전제와 폭력이며 소유욕에 다름 아니다. 사랑의 궁극으로 남녀가 하나가 되는 순간은 서로의 사적공간이 확보되어 지성적으로 서로의 존재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을 때이다.

현대는 사랑도 자본처럼 경쟁하고 소비한다. 더 많이 탐닉하고 집착하고 소유하려 한다. 게다가 인간은 어느 누구도 생식세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으로 착각하는 본능의 노예이다. 여름의 열기가 사랑을 충동질하는 계절이다. 사랑. 그 난해하고 복잡한 미로를 걷는 도중 한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욕망하는 생식기에 불과한가? 아니면 상대를 풍요롭게 하는 낙원인가? 도대체 나는 제대로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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