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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내 친구 주은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찐빵 집에서였다. 지금처럼 봄을 기다리던 시절인지, 겨울을 보내는 시절인지 그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계절의 틈새인 것만은 분명하다. 온다는 것과 간다는 것의 감정이 서로 뒤섞인 다소 미묘했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 다닐 때 잠시 고향에 들렀다. 그리운 친구를 찾았을 것이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어디 선술집이라도 들어가서 왁자하게 떠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간 곳은 선술집이 아니라 철길 옆의 찐빵 집이었다.

금방 쪄온 찐빵의 온기를 느끼며 우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주인장에게 막걸리를 부탁했다. 아니면 우리가 사가지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막걸리도 함께 마셨다.

기억이 제대로 편집되지 않는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내 친구의 말들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내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주은이는 벌써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있었다.

"주은아 부럽다, 넌 벌써 사회인이구나. 우린 아직 학생이어서 취업도 해야 하는데…." "조금 지나면 네가 나보다 나을 거야. 선생 봉급이 얼마인지나 알아?" "선생님 생활은 마음에 들어?"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난 내 친구 주은이가 어느 순간 두 눈이 반짝이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고 느끼면서 나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산 어른처럼 느껴졌다.

주은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똘똘한 친구였다. 통솔력도 있어서 친구들도 많이 따랐고 매사에 주도적이었다. 나와 한반에서 반장, 부반장으로 학급일도 함께 상의하고 어려운 일들을 처리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참으로 당당한 친구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 내 친구 주은이가 교육대학을 갔을 때 마음이 좀 짠했다. 더 좋은 대학을 갈수도 있었고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주은이는 가난한 집안의 첫째였고 하루라도 빨리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다.

시내 신작로 가에 있는 주은이의 집을 지나칠 때마다 항상 술에 취해있는 친구 아버지의 초췌한 얼굴을 마주쳤고, 어둑한 집안에서 강냉이 뻥튀기를 하고 있는 친구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수없이 보아왔기에 난 주은이의 결정을 수긍하면서도 내심 나 혼자만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 얄팍한 기우였음을 내 친구 주은이의 말들을 들으면서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반 애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알아? 모든 애들에게 시를 짓게 하는 거야. 우리 반 애들은 모두 시인이야. 벌써 학급문고도 냈고 교육부에서 상도 받았지. 우리 애들은 모두 다 밝아." 난 내 친구 주은이의 얼굴이 뿌듯함으로 반짝이며 빛나는 걸 보았다. 그 모습에 난 진심으로 기뻤고 교사로서의 친구가 자랑스러워졌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각자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연락이 뜸해졌다. 나중에 같은 학교 선생님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 내 친구 주은이가 고향근처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발령난 사실을 우연히 경북도민일보를 통해서 알았다.

애들에게 세상을 시로 느끼게 하고 시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쳐온 내 친구의 평생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로 완성된 듯 했다.

찐빵처럼 넉넉하던 주은이의 얼굴이 환하게 떠올랐고, 20대 때 내 친구가 사주었던 따끈한 찐빵과 막걸리를 이젠 내가 사주러 막 달려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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