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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환

에세이스트

강이 표정을 잃었다. 몇 달 전부터 흐름이 느려지더니 이제 흐르는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물은 더 이상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머물러만 있다.

제 주위만 뱅뱅 도는 가냘픈 강물은 마지막 가쁜 숨을 내쉬는 짐승의 육체처럼 점점 쇠잔해져 갔다.

유례없는 가뭄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점점 메말라가는 강을 바라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는 강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강의 물길을 따라 몇 시간이고 걷곤 했다. 낙동강 지류인 강을 여기저기 떠돌던 내 발길을 되돌릴 땐 집으로 가야하는 시간이었다.

강물 따라 정처 없이 걷다보면 집이 그리웠고, 집에서는 강물이 그리웠다. 물길을 거슬러 집으로 가는 길이 더없이 포근하던 때였다.

나이가 들어 가장 설레며 걷던 길은 역시 섬진강길 이었다.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17번 국도를 따라 가노라면 남원, 곡성, 구례를 거쳐 경남 하동까지 철마다 달리 피는 꽃들이 나부대었다.

봄이면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빨갛게 늘어선 철쭉, 벚꽃, 산수유, 복사꽃들이 흐드러지게 만발했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이고, 화개장터에서 참게와 말간 재첩국을 먹으며 곁들이는 막걸리 한잔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축축이 젖은 모래는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는 박경리 '토지'의 구절처럼 섬진강의 모래는 얼마나 부드럽고 촉촉했던지. 모래가루는 흡사 고운 쌀가루처럼 금방이라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으로 만들어도 될 듯했다.

내 기억으로 섬진강의 으뜸은 역시 가을 풍경이다. 500리 길을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섬진강길이 가을 단풍으로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갈 때 마을마다 감이 익어가고, 남태평양으로 나갔던 연어는 수만 킬로미터를 횡단하여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되돌아왔다.

거침없는 섬진강의 물결을 남해바다에서 눈부신 황금빛으로 마주할 때, 내 긴 여정도 항상 아쉬운 여운을 남긴 채 끝이 났다.

하지만 내게 강에 대한 추억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1991년 3월초, 대구에 볼일이 있어 여관에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다.

양치질을 하려는데 수돗물이 역했다. 물을 마실 수도 씻을 수도 없을 만큼 독한 냄새였다. TV를 켜자 낙동강이 한 전자회사에서 유출된 페놀원액으로 오염 되었다는 속보가 떴다.

그 때부터 도시는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모든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빵으로 식사를 해야 했다. 몸은 씻지도 못하고 가게에서 사온 생수로 겨우 목만 축일 뿐이었다.

당시 페놀이 부산, 마산까지 영남 전 지역을 오염시킨 만큼 내게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낙동강을 일부러 찾는 일이 없어졌다. 낙동강을 생각하면 악취가 떠올랐고, 오염이 연상되었고, 목이 말라왔기 때문이다.

강물은 인간 이전부터 존재해온 모든 생명의 시원일 터이다. 물길 닿는 언저리, 그 강 유역에 빌붙어야만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문명을 만들어가는 게 인간일 뿐이다.

바짝 말라가는 강을 바라보며 난 도도하게 흐르는 강의 당당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큰 호흡으로 힘차게 흐르는 강물소리를 간절히 듣고 싶었고, 겸허해져야 하는 인간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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